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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3.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8회

나의 길을 간다는 것은

48




하기 싫은 일을 할 때가 힘들까 아니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할 때가 힘이 들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쉽게 답하지 못한다. 질문을 조금 바꾸면 판단이 분명해진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할 때가 힘들까 아니면 좋아하는 이를 사랑하지 못할 때가 고통스러울까.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IT업체에 다니는 소년의 친구는 만날 때마다 고민을 털어놓는다. 월급이 많은 만큼 스트레스도 많은 일이 힘들게 한다고 했다. 소년은 친구의 처지를 잘 몰라 그의 불평이 배부른 투정이라고 가볍게 여겼으나 반복되니 걱정이 생기며 어설픈 개입이 잦아졌다.

소년은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기에 친구에게 말할 때마다 이해의 간극은 오히려 벌어졌다.


-좋은 근무환경에다 니가 원하던 회사였잖아?

-요즘은 상사 없는 니가 부럽다.  이젠 좀 쉬면서 다른 일을 찾아봐야겠어.

소년은 순간 자신의 처지가 부러운가 갸웃했다. 친구들 중에서 유독 잘 풀린다는 적지 않은 위화감을 안겨주던 그가 날 부럽다고 하다니. 썩 반갑게만 들리지 않았다.


-넌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 벌고 싶을 때 벌고 쉬고 싶을 때 쉬니까 니가 나보다 낫다.

-프리랜서가 프리가 앞에 붙어 있어 자유가 특권인 줄 아나 본데, 넌 랜서를 놓치고 있어!

친구는 가볍게 던진 말에 소년은 돌 맞은 개구리 같은 표정으로 발끈했다.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뜻밖의 리액션에 친구도 오징어 다리를 씹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너는 도망가고 싶을 때 어디론가 갈 수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디로 갈 곳이 없어. 너는 대안이 있고 난 없단 얘기야.

불쑥 내지른 감정을 주워 담으며 아까보다 차분하게 말을 덧붙였다. 비난도 변명도 아닌 지금의 심정 그 자체여서 더 이상의 언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소년은 긴 시간을 천천히 걸어가며 자신의 길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답이 없는 이 길을 정작 소년 스스로  답답해하지 않는데 왜 답을 말하려 하면 미궁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길은 말하여질 수 없는 길인가. 축적되어 승계할 수 없는 유일의 길이여서일까. 그렇다면 단 한 번의 불꽃일 텐데 그러한 삶도 가치가 있을까! 오만 걸음을 걸어가며 소년은 오만 가지 생각을 늦여름밤의 하늘에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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