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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Apr 24.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49회

그대는 떨리나요 설레나요

49



소년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볼 때보다 책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 가슴이 뛰었다. 책을 보는 것을 무언의 자신과의 전투로 보여진다면,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은 전투태세인 병사를 보는 듯 긴장시킨다. 이런 류의 전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것이 전력보완 차원에서 옳다. 처절하게 싸우고 엄청난 피를 흘리고 난 후 세상에 나올 때는 전투의 흔적을 보이지는 않아야 고수인 것이다. 책은 창을 닮았다.  언제나 혼자 남겨질 때를 노려 전투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 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두려움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래서일까. 만날 때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있는 노인이다. 소년은 그 모습이 늘 설레면서 두려웠다.


-자네는 언제 설레고 언제 떨리는 마음이 이는가?

소년은 점쟁이에게 과거를 들킨 듯 쌍꺼풀 없는 두 눈이 순간 똥그레졌다. 방금 전 책을 들고 다니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었고 그 마음을 꿰뚫어 묻는 질문에 떨렸기에 두 개의 감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

-시낭송대회 본선이 달포 후에 있다고 했나?

-네.

-처음 나가는 심정은 어떤가?

-평가를 받는 무대는 처음이라 떨립니다.

-난 자네가 떨림보다는 설렘을 가지고 무대에 올랐으면 하네.

-네?

소년은 기시감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어디서 보았더라. 아무리 떠올려도 카페 창 너머로 무성한 나뭇잎들만 짙게 푸르를 따름이었다. 색에 무딘 소년에게 퍼플과 바이올렛 차이를 구분하라는 주문처럼 당혹스러웠다.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의 차이지. 어쩌면 매력을 바깥에 두느냐 자네 내면에 두느냐로 볼 수도 있겠군. 대상의 매력이나 위력이 자네를 뒤흔든다면 떨림이 작동할 것이고, 자네의 열정이 소용돌이쳐서 드러난다면 설렘으로 주체할 수 없겠지. 늘 설렘이 옳다 할 수 없으나 대회에서는 떨림이 오히려 장애물이 될 수 있다네.

소년은 가만히 두 개의 감정을 복기해 보았다. 노인이 말한 대로 떨림 때문에 설렘이 닫혀 버렸던 때도 있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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