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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4.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59회

낭독과 낭송 2

59



-지난 시간에도 언급했듯이 낭송 이전의 단계가 낭독이 아닙니다. 시와 소설처럼 상호 독립적이고 수평적 관계라 할 수 있어요. 소설을 짧게 쓴 것이 시가 아니듯 외우지 않고 하는 낭송을 두고 낭독이라 하는 건 아닌 거죠.

시낭송 모임 시치미 리더의 비교를 곁들인 설명에도 소년은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론이란 것이 이토록 타고난 성질이 고약하다. 설명하는 쪽은 갈수록 사실에 가까워지고 수용하는 쪽은 갈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점점 각자의 영토와 담장만 견고하게 지키고 쌓아 올릴 뿐이다. 이때 유일한 서로 간의 연결은 문을 내려는 의지이고 곧 질문이 해답이다.


-그렇다면 낭독과 낭송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사실 각각의 의미적 해석부터 전달 대상, 신체 사용범위, 표현양식, 궁극의 지향점 등 많습니다. 그중 결정적인 차이점은 시선의 활용과 발화의 태도입니다.

이론과 실제의 간극이 실재한다는 논리를 믿는 소년은 리더도 예외일 수 없다고 넘겨짚고 있었다. 이때 리더는 준비한 한 편의 시가 출력된 프린트물을 모임 구성원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제목은 비워져 있었고 2연으로 구성된 짧은 시였다. 사랑하는 마음이 차오를 때마다 를 타고 연인에게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쉬운  말로 쓴 시였고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 이라면 쉬 공감 가는 문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방금 제가 드린 시 한 편으로 낭독과 낭송을 해볼까 합니다. 누가 먼저 해볼까요? 부담 갖지 마시고 한 번은 낭독으로 이어서 낭송으로 하시면 됩니다.

리더의 정면에 앉아있던 모임에서 가장 어린 여자가 이제 막 땅을 밀어내고 나온 죽순 같은 미소를 지으며 펴다만 오른손을 오른뺨에 나란하게 들었다. 순간 그 모양새가 고양이 같아 그녀의 목소리에서 야옹이라고 나올 줄 알았다. 외모와 달리 허스키 보이스였다. 낭독을 할 때엔 몸도 소리도 수줍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듯 읽었고 낭송을 할 때엔 자리에서 일어나 웅변하듯 읽었다. 목소리가 없는 마임이었다면 완벽한 시도라고 소년이 생각할 찰나에 리더는 칠판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낭독과 낭송은 첫 번째 시선에서 분명하게 갈라집니다. 그후 두 번째 시선에서 둘은 일치합니다. 전자는 실제의 눈이고 후자는 가상의 시선입니다. 방금 하신 분은 몸과 표정의 차이를 주셨는데 틀린 건 아니나 미약한 부분을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시선에 집중해서 다시 한번 해보시겠어요?

시선만 바뀌었는데 여자의 낭독과 낭송은 아까와 다른 시를 읽어내는 것 같이 생기가 묻어났다. 특히 낭독을 할 때엔 죽순에 구르는 밤이슬 같은 눈물이 맺힌 걸 본 것도 같다. 초점이 잘 맞춰진 시선에서 나온 목소리는 피사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재로 불러냈다.


-두 번째 특징으로 낭독이 독백이라면 낭송은 선언이자 고백이어야 합니다. 어느 분이 해 보시겠어요?

소년은 리더의 주문에 레시피대로 만든 요리처럼 낭독은 작게 낭송은 크게 하고 자리에 앉았다. 누구라도 독백은 중얼거렸을 것이고 선언은 내질렀을 테니 말이다. 리더의 말을 듣고 나자 소년은 자신이 반은 맞았고 절반은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낭독은 내면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고 낭송은 밖으로 말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낭독은 언제나 청자가 하나이나 낭송은 대상이 다수입니다. 말을 작게 하는 것이 낭독이 아니라 내 안의 나에게 하는 말이기에 크게 할 이유가 없어서 그리 하는 것이죠. 낭송도 같은 이유로 소리의 차이를 보이는 겁니다.

리더의 표정은 레드카드를 선수에게 내보이는 젊은 심판의 그것과 같았다. 소년은 정확한 판정을 인정하는 선수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멋쩍은 기분에 무심코 본 휴대폰 초기화면 시계에는 그새 두 시간이나 지난 시간이 찍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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