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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3.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58회

물고기 잡는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

58



-어미처리에서 낭송가의 진정성이 묻어난다고 말씀하셨는데, 반복되는 어미가 같을 때에는 높였다가 내리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그 반대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요?

노인은 능력이라고 말을 했는데, 소년은 진정성으로 고쳐 기억하고 있었다. 소년은 시를 선택할 때 김소월의 '초혼'과 같이 '~이여' 나 '~노라'로 반복되는 시는 피했다. 외우기는 쉽지만 표현이 궁색했다. 기껏해야 올렸다 내렸다 밖에는 달리 요령이 없었다. 그것도 세 번이 이어지면 그 차이도 미비해 의도하지 않은 리듬이 나왔다. 시도 노래인지라 비슷한 어미를 만날 때면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소년의 녹음된 낭송을 들으면서 노인이 미간을 구긴 때도 대체로 어미 부분에서였다. 그러나 한 번도 어미처리를 어찌하라 말한 적이 없다.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결함인지 아니면 타고난 감각이라 그런 건지를 듣고 싶었으나  수 없어 답답했다.


-어미처리가 허약한 건 어간에 충실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어미를 발화하기 이전에 의도와 그림을 완성해야 어미가 붓글씨의 획 끝처럼 단정하게 모양을 갖추는 것이지. 이유가 어설프니 방법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거란 말일세.

소년은 들을수록 알듯 말듯한 노인의 말에 엉뚱하게도 탈무드의 말이 떠올랐다.

-물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

소년은 노인이라면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덧붙여 말할 것 같았다.

-물고기를 왜 잡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하라.


소년이 어미 처리에 대한 깊은 의문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그날 이후 우연히 보게 된 노인의 낭송 영상 때문이었다. 한일수교 50주년을 기념해 한일 문화교류행사가 열렸는데 행사 말미에 각국의 낭송가들이 나와 준비한 시를 낭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국 측은 일본 시를 일본 측은 한국시를 자국의 언어로 번역해 낭송하기로 했다. 주제는 사랑 시였다. 일본 낭송가가 먼저 낭송했는데 준비한 시는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이었다. 이어 한국 측 대표로 나온 노인이 선택한 시는 스즈키 쇼유의 '노부코'였다. 노부코라는 말이 마흔여덟 번이나 반복되는 시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반복해 쓰면서 그리워하고 괴로워하는 화자를 표현하고 있다. 소년의 전체적인 감상은 하나하나의 노부코가 독립된 이야기로 다가왔다는 것이었다. 노부코와의 만남부터 설렘, 그리움, 안타까움, 열정, 갈등, 애증, 슬픔 등이 부를 때마다 거침없이 옮겨갔다. 마치 48부작 드라마를 온몸으로 체화하는 듯했다. 영상을 두 번 반복해서 볼 때엔 어미에 집중해 보았다. 노부코를 동일한 높낮이로 부르는 대목들이 있었으나 휘몰아치거나 하염없이 느리게 읽으며 이를 무색하게 했다. 소년은 이따금씩 따라 해 보았으나 노인의 흐름과 어긋나고 입 안에서 성글었다.


-표현의 이상적인 패턴은 없는 걸까. 분위기는 특정한 부분의 포착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 건가.

노인의 영상을 세 번 보고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노부코를 호명하는 방법이 아닌 노부코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어쩌면 태도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노부코를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고 그녀와의 추억을 가슴 한 켠에 처절한 사투끝에 지켜낸 새둥지처럼 마련해두고 있었다. 들을수록 소년은 반복되는 시어의  낭송 요령보다는 오히려 노인이 노부코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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