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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May 05. 2022

당신은 지금 시낭송이 필요하다 60회

우연이 전해주는 진실의 순간

60



예기치 못한 순간을 우연이라 말한다. 그 안에는 원인과 결과가 느슨하거나 취약하다.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감상하고 소설을 읽을 때 이야기를 만든 이가 얼마나 필연을 가장한 우연과 치열하게 사투하는지가 재미와 감동의 척도가 된다. 우연을 잘 숨긴 자가 이야기의 승자다. 과연 그러할까.


시낭송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어야 했다. 현실이라는 우연의 순간들을 켜켜이 쌓아 올린 결과물일 테니 말이다. 노인이 최근 소년과 우연히 나눈 우연에 관한 이야기를 엿들어 보자.


-선생님! 시를 체화하는 과정에서 행에서 행으로 연에서 연으로 넘어갈 때가 잘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소년이 '체화'라고 표현한 건 최근의 일이다. 시를 암기한다고 말했다가 노인에게 제법 긴 시간 혼이 났기 때문이다. 외운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행해진 듯 보이는 것이지 과정을 왜곡한 표현이라고 했다. 소년이 따져 묻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체화란 것은 직접 자신이 경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인데 시는 시인이 쓴 게 아니냐고 반박했던 건 사실이다. 노인은 시낭송에 들어가는 낭송가의 육성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며 그 이야기의 중심에 낭송하는 이의 경험이 녹아 있다는 해석으로 응대했다. 다른 표현이 있으면 좋겠지만 체화라는 기존의 말이 그나마 암기를 대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상당기간 소년은 시어를 외웠었다.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외우는 것만 하지 않으면 시낭송가가 최고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는 시 쓰는 일만 안 해도 된다면 시인이 최고의 직업이라고 하는 것만큼 무모한 상상이었다. 이후 소년은 체화를 통해 집중의 대상이 활자 자체에서 이미지로 넘어가는 순간 그 고통들은 침으로 막힌 혈을 찾은 듯 말끔히 사라졌다.


-그건 우연을 받아들이지 못해서지. 개연성이라는 틀에 갇히면 안 된다네. 세상은 결코 필연이 당연한 듯 각각의 연결고리가 견고할 것 같아 보이나 그렇지가 않아. 자네가 최근에 먹은 매일의 끼니들을 떠올려 연결해보게. 결코 계획대로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될 걸세. 심지어 함께한 이들의 존재마저도. 예상할 수 없다는 건 우연에 내맡겨진다는 걸세. 우리가 서로 만난 시간들도 온통 예기치 않은 순간들이지 않았나.

그도 그럴 것이 운명이라는 말, 인연이라는 말도 우연에 대한 결과론적인 판단이지 않은가. 소년은 운명까지 떠올려 생각을 확장해 보지만 시낭송과 연결하는 상상까지는 힘이 닿진 않았다.


-그래서 낭송을 할 때 낭송하는 이의 이야기가 들어가야 한다네. 시어들은 이야기들을 걸치는 옷걸이 같은 거지. 바닥에 흐트러진 옷들을 가지런히 걸어 온전하게 보이게 하는 도구가 된다네. 걸려있는 옷 사이는 어떠한 연결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으니 걱정 말게. 거기에 진실이 있으니 말일세. 내 이야기니 누가 봐도 진정성이 우연의 조각들을 진실의 필연이라 여기고 그들도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내 만끽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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