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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28. 2024

미사 가는 길

0595

추운 날 새벽미사 가는 길은 투명한 유혹이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찬 공기가 밀친다.


밤새 골목을 비추던 가로등이 지쳐 보인다.


그 너머로 막 보름을 지난 달이 둥그렇다.


막 건널목에 다다르자 신호등이 또렷하다.


돌아서 둘러보니 차 없는 도로가 광활하다.


휴일 이른 새벽의 도시는 잠시 광야가 된다.


아무도 마시지 않은 첫 공기를 들이마신다.


어릴 적 약수터의 물맛 같은 알싸함이 있다.


늘 미사는 새벽이 첫물을 받아마시는 듯하다.


감각이 겨우 눈을 뜰 때 거룩한 순간이 온다.


밤과 낮 사이

죽음과 삶 사이


어제까지의 번뇌는 한낱 먼지에 불과하다.


생을 부추기는 언어만 난무하다.


다시 살아도 되겠구나


내가 두서없이 잘 가꾼 정체 모를 미움들을 허문다.


새벽길을 걷지 아니하였으면 허깨비를 애지중지했을 것이다.


손을 모으자 영혼의 등에 불이 들어오고 성호를 긋자 영적 갑옷을 두른 듯하다.


틈새가 촘촘히 난 채에 나를 통채로 거르기 시작한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마저도 걸러진다.


거른다고 사해지지는 않지만 직면할 수 있다.


똑바로 바라보기만 해도 청결해 질 수 있다.


죄는 비스듬히 바라봄으로 인해 덩치를 키운다.


새벽에 코끼리를 등에 이고 나갔다가 나비 등에 업혀 돌아온다.


카나 혼인잔치의 기적보다 현란한 새벽을 체험한다.


부디 아무도 모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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