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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an 29. 2024

글쓰기 해부

0596

비스듬히 누운 듯 앉아서 글을 쓴다.


다리와 몸의 각이 구십 도에서 백팔십 도 사이에서 유동적이므로 보는 각도에 따라 앉기와 눕기의 구분이 달리 보일 것이다.


몸을 살짝 옆으로 틀자 기댄 자세가 된다.


문단이 바뀔 때마다 몸의 형태가 바뀐다.


기댄 듯 앉았다가 앉은 듯 누웠다가 누운 듯 기대서 글을 쓴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머리가 안 돌아가서 몸을 돌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않다.


쓰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잘 쓰고 싶어서 내 안의 글 재료들을 흔들어 게워내기 위함이다.


글쓰기가 여전히 어려운 건 글감을 소화해 내는 과정이 아니라 글감을 게워내는 과정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자연스럽다면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거슬러 역행하는 인간의 행위에 가깝다.


처음에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나의 토사물이 부끄럽고 역겹다.

점차 반복하면서 기존의 행위가 숭고함으로 승화된다.

음식과 다른 메커니즘으로 재편성되는 것이다.


내 몸에서 나온 것 중에서 가장 우아한 배설물이 된다.

타인을 구하기도 하고 나를 살리기도 한다.


오늘 같은 날에는 헛구역질만 하다가 끝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멈출 수 없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공공연하게 작가라고 불리면서 글쓰기를 게을리한다면 축구공을 장식장에 예쁘게  모셔두고 축구선수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스스로에게 두렵기에 더욱 그렇다.


https://brunch.co.kr/@voice4u/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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