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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Sep 20. 2024

열대저압부

0831

중국 상하이를 들썩이게 한 제14호 태풍 풀라산이 한반도로 방향을 틀었다는 소식에 앉아 있던 자세를 세 시 방향으로 바꿔 축축한 회색 하늘을 올려다본다


풀라산(PULASAN)은 무등산 수박처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도 일부 정해진 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희귀 과일이다


람부탄보다 강한 맛과 향기를 태풍에 실어 보냈으니 그 달콤함에 유혹되어 혼쭐이 난 중국을 뒤로하고 세력을 줄이며 열대저압부로 한반도에 영향을 줄 모양이다


초속 17m는 되어야 태풍 소리라도 듣는데 그에 못 미치는 귀여운 녀석으로 보이지만 언제 표정을 바꿀지 모른다


자연이 하는 일은 누구도 모른다


현재 풀라산은 자전거를 타고 딱 그 속도로 우리나라를 향해 북서진하고 있다


이 정도 속도로 달려온다면 내일 오후쯤에 한반도 남부에 당도할 것이다


한반도의 절경인 남해 쪽 해안선을 따라 진도, 여수, 통영을 두루 거치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전망이다


무더위로 지쳐 있을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강한 비와 바람으로 여름의 마지막을 공포스럽게 마무리할 작정이다


고급 과일의 이름을 가졌으니 점잖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수분을 할 때에는 수꽃이 알아서 열리지 않아서 인공적으로 해 줘야 하는 까탈스러운 녀석이니 설득도 쉽지 않다


게다가 껍데기에 가시가 박힌 녀석이니 장미만큼 자존심도 셀 것 같다


존재가 유난한 것들은 태풍 이름에 붙이지 않아야 한다


이름값을 한다


열대저압부로 약화되긴 하지만 엄청난 수증기를 머금고 온다면 지금 시기적으로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오니까 서로 한바탕 붙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싸움은 내일이 진검승부가 될 것이다


이때 강한 바람은 시속 70km에 달하고 천둥번개도 예상된다


덕분에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수은주는 떨어졌지만 길을 가다가 간판도 떨어질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주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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