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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닌 영검한 기능

챌린지 71호

by 이숲오 eSOOPo

무화과 숲


황 인 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글은 영검해서 함부로 쓰는 것을 차마 권할 수 없다


글이 골로 가는 것은 말이 물처럼 범람해 덮쳐 오는 것과 꼴을 같이 하므로 글은 말처럼 천 리의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만큼 천 일의 시간을 가서 기다린다


글은 쓰는 순간 예언서가 되어 미래에 둥지를 튼다


이에 대한 증명은 쉽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 않는다


그대가 일기를 쓴다면 정확히 1년 전의 기록을 펼쳐 보라 오늘 떠올렸거나 그대가 오늘 쓴 일기 혹 브런치의 문장 속 단어와 겹치는 것을 발견케 된다


그대가 누구보다 꼼꼼해 10년 전 20년 전 기록도 보존하고 있다면 경건하게 펼쳐 보라 그대는 그 때 쓴 문장에 가까운 인간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정약용이 그러했고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그러했고

그대가 본 적 없는 우리 아빠가 그러했고

앞으로 30년 후 오늘의 기록을 보게 될 그대가 그러할 것이니 무엇이 더 그렇지 않음을 증명하랴


글을 쓰는 것은 휘청거리는 나의 운명을 조율한다


마구 던져져 헝클어질 미래의 나를 곧게 보정한다


글쓰기가 이정도의 영험도 없다면 글은 오래전에 멸종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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