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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습으로 후져야 해

챌린지 72호

by 이숲오 eSOOPo

작별


주 하 림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픈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시 기댄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라도 빛나고 싶어


성공하고 싶은 욕망 앞에서 찬물을 끼얹기 어렵다


잠시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로 읽혀 안쓰럽다


집으로 가는 길가에 벚나무와 목련나무가 나란하다


이들은 자신의 리듬대로 피고 지니 서로가 신난다


하나가 시들고 하나가 만개해도 조급한 법이 없다


서로를 흉내 내지도 않고 나만큼만 피고 아름답다


시들 때에는 주저 없고 가차 없고 이렇게 소리친다


내 모습으로 당당하게 후질 거야


빌린 아름다움보다 본연의 발견되기 직전 봉우리 상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봄의 만상은 말한다


그럴싸한 완성에서는 방부제 냄새가 고약하지만

그려내는 과정에서는 그대의 향기가 몽실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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