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새바람같이는
이 영 광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겐 지금 높새바람같이는 잘 걷지 못하는 몸이 하나 있고,
높새바람같이는 살아지지 않는 마음이 하나 있고
문질러도 피 흐르지 않는 생이 하나 있네
이것은 재가 되어가는 파국의 용사들
여전히 전장에 버려진 짐승 같은 진심들
당신은 끝내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서 꼿꼿이 죽어가지만,
나는 다시 넝마를 두르고 앉아 생각하네
당신과 함께라면 내가, 자꾸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
내 하루를 손으로 쓰다듬다 보면 잘 아물지 않는 상처가 턱턱 손끝에 걸린다
상처는 손잡이가 없어서 제멋대로 열고 닫지 못하고 기다려야만 한다
내 생애 모든 기다림은 상처가 가르쳐준 것들이다
외상과 다르게 내상은 완치를 모른다
돌봄의 게으름을 기억했다가 반드시 되돌려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약이 나와도 나는 여전히 고달프고 고통스럽고 고민스러운 것이 경이롭다
타자라는 바이러스는 예방도 치료도 없다고 하니 타자기 앞에서 글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무구하다
함께 있을 때 내가 근사하다고 느끼게 하는 타자를 결코 죽여서는 안된다 십원짜리 타잔팬티를 구해 구애해서라도 그의 마음을 붙들어 매어 둘 일이다
널 부르는 날과 부르지 않은 날의
차이를 처절하게 느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