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38호
개 같은 가을이
최 승 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벼랑 끝에서는 누구도 현명해지기 어렵다
감각만이 외줄 타기를 한다
원인과 동기는 자취를 감추고 낯선 선택이 남는다
어디선가 본 듯한 것들은 제 꼬리를 자르고 저 멀리 도망간다 아차 꼬리만 묶어둔 게 화근이 될 줄이야
모든 난처한 일들은 매번 겪으면서도 대책이 없다
불행은 마음을 잡을 때마다 내게 달려들고
다행은 마음을 놓을 때마다 슬쩍 지나간다
막바지 겨울 공기가 2월의 새벽에 매달려 있다
이렇게 움츠리며 피하고 싶은 날씨도 이내 그리워질 것이다 계절은 망각이 익숙하다
잊고픈 아픔들은 계절의 겨드랑이에 끼워 놓는다
나이 들수록 따뜻한 물 한 모금이 잠든 몸을 깨운다
뜨거운 것을 그렇게 가까이해도 좀체 뜨거워지지 않는 가슴은 여전히 미스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