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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살아봐도 온통 모르지만

챌린지 13호

by 이숲오 eSOOPo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신 용 목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공원 벤치에

누워서 바라보면 구름의 수염 같은 나뭇잎들 누워서 바라보면

하얗게 떨어지는 별의 비듬들

누워서 바라보며

칼자루처럼

지붕에 꽂혀 있는 붉은 십자가와

한켠에 가시넝쿨로 모여 앉아 장미 같은 담뱃불 뒤에서 맥주를 홀짝이는 어린 연인들의

눈치를 살피며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버려진 매트리스에 붙은 수거용 스티커를 바라보며 한때의 푹신한 섹스를 추억하며

일주일에 한번씩 종량제 봉투를 꾹꾹 눌렀던 손을 씻으며 거울을 바라보는 얼굴로

어느 저녁엔 시를 써볼까

어둠속에서 자라는 환한 그림자를 밤의 기둥에 쿵쿵 머리로 박으며

방 없는 문을 달고 싶다고

벽 없는 창을 내고 싶다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오래 눕지도 못하는 공원 벤치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으로 칠한 조립식 무지개처럼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별이 진다 깨진 어둠으로 그어 밤은 상처로 벌어지고 여태 오지 않은 것들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인 기다림으로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너는 환하게 벌어진 밤의 상처를 열고 멀리 떠났으니까

나는 별들의 방울 소리를 따 주머니에 넣었으니까

바람 불 때마다 방울 소리 그러나

나는

비겁하니까




이토록 살아봐도 어떤 방식으로 완벽하게 살아야 할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하한선을 정할 수는 있겠지


하루에 시 한 편 자신에게 읽어주지 못할 정도로 허겁지겁 살지는 말아야지


하루에 손바닥만 한 글 한 편 써 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우왕좌왕 살지는 말아야지


하루에 구름 한 조각 올려다보지 못할 정도로 앞만 보고 살지는 말아야지


하루에 잎사귀 한 번 매만져 보지 못할 정도로 아등바등 살지는 말아야지


하루에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인색하며 잘 살고 있다고 말하지는 말아야지


어제의 나를 고스란히 끌어와 사느라 오늘의 나를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게 하지는 말아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거창하지 않고 쓸모없어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이 나를 완전하게 채우네


적어도 이렇게라도 살지 않으면 어제를 죽이지 못해 안절부절 하다가 오늘을 놓치고 말테니


온통 살아봐도 이토록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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