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14호
병원
윤 동 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왼손 넷째 손가락이 부어 아프다
평소에 이름도 없고 쓰임도 없던 이 손가락이 아프니 키보드에서 ㅈ,ㄴ,ㅌ과 w, s, x를 칠 때마다 통증이 온다
한자어로는 약지, 무명지로 불리지만 순우리말로는 제 이름 하나 가지지 못한 신세의 손가락이다
다른 손가락에는 있는 폄근*도 없어서 이 손가락만 움직이려면 기예에 가깝게 난해하다
서양에서는 가운뎃손가락이 욕이지만 일본에서는 약지를 어렵게 치켜세우면 그게 욕이다
가장 서럽고 쓸모가 없어 보여서일까
결혼반지를 낄 때에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어주어 그때 빛난다
없어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인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거사 전에 동료들과 동의단지회를 결성할 때 자른 손가락도 왼손 넷째 손가락이다
손가락을 써서 하는 피아노연주에서 4번이 넷째 손가락인데 신체적으로 둔한 부분이 많이 표기된 쇼팽 연습곡은 유독 난코스이기도 하다
잘 쓸 일이 없는 넷째 손가락인데 아프니까 수시로 어딘가에 자꾸 부딪히고 덧나서 부어 있다 퉁퉁
소홀한 것들이 지르는 아우성 같다
*폄근-척추동물이 관절을 펼 때 작용하는 근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