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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건 왜 수월하지 않은가

챌린지 23호

by 이숲오 eSOOPo

탄 것


이 근 화



봄 날씨가 꽤 쌀쌀했고 으슬으슬 떨렸다. 일본식 주점에 가서 청주 한잔을 주문했다. 생선 꼬리지느러미를 태워서 잔 위에 띄워왔다. 찬물 한바가지에 띄운 꽃잎도 아니고 어리둥절했다. 부드럽고 우아한 맛을 기대했으나 태운 지느러미 때문인지 누린내가 났다. 청주의 비린내를 지느러미로 잡으려는 것일까. 알 수 없는 마음으로 홀짝였다. 얼굴이 금세 달아오르고 손발이 점차 따뜻해졌다. 마음은 심해를 누비는 어류의 것이 되었다. 물의 냄새는 물 바깥의 것이어서 나의 코는 간단히 사라지고.


북쪽 창 벽면에 응결이 지고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몇해 방치했더니 점점 심해졌고 곰팡내가 나기 시작했다. 벽에 먹물을 흩뿌린 듯했다. 검은 꽃이라면 꽃이라 할 수도. 부엌에 면한 곳이니 날마다 조금씩 나눠 마시고 있는 것인지도. 어느날인가 토스터에서 식빵이 새까맣게 탄 적이 있다. 허기와 탄내가 진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곰팡내가 줄어들었다.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입맛을 다셨다. 숲을 다 태운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영안실 복도에서 코는 냄새를 모르고 흰 꽃들은 지나치게 희어서 가짜 같았다.


마음속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들이 있다. 마음을 먹고 쑥쑥 자라는 입 없는 몸들이 있다. 발이 부어서 더이상 걷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내 코가 그들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냄새의 강자들이 내 코를 가볍게 무너뜨리는 순간까지.




귀한 것들은 왜 이다지도 더디고 친절하지 않은가


쉽게 손에 잡히고 바로 알아차리는 건 죄다 시시한


많은 통로를 지나야 하고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아도


걸치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겪어야 내 것이 되는


반복이 불가능한 순간들로 쌓이고 겹치는 고난들


갈수록 정답을 결정하지 않고 질문을 지어 올리는


답을 지우고 나를 보세요


왠지 나는 누추해서 남을 기웃하다가 나를 놓치고


남의 큰 감이 떫은 줄도 모르고 욕망하다 뒤처지고


줄세우기에서 희생되어 둘째 줄을 겨우 차지하다가


축제의 무대를 스스로 경쟁의 운동장으로 뒤바꾼다


귀한 것들은 얄팍한 요령으로 작게 유혹하지 않고


묵직하게 본질에 스며들게 해 날 표준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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