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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12. 2019

Untitled #08


Emily, United Statets



에밀리는 밀라노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친구 중의 하나였다. 다국적의 아이들로 이루어진 반에는 미국 아이가 둘 있었는데, 에밀리는 내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왔다. 유쾌한데다 머리까지 비상한 아이라 과제도 함께 하고, 같이 여행도 곧잘 다니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엔가 정색을 하더니 불쑥 고백을 했다. 


자기는 결혼을 했다고. 그리고 아이도 둘이라고. 깜짝 놀랐다. 그녀의 나이는 만 스물 다섯.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의 나이였다. 큰 아이가 일곱살, 작은 아이가 다섯살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을 찾아온 그녀의 아들을 처음 보았단다. 그것을 인연으로 둘은 사랑에 빠졌고, 에밀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뛰어난 학생이던 에밀리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곧 첫 아이가 태어났고, 두 해 뒤 둘째가 태어났다. 남편이 한 대 밖에 없는 차를 타고  출근을 하면 학교로 갈 수 있는 다는 수단ㄴ이 없던 에밀리는 집에 남아 하염없이 울었단다. 너무 공부가 하고 싶어서. 


그 모든 상황에도 불고하고 그녀는 마침내 대학을 졸업했고, 그 곳에서 일을 하다 유학을 결심했다. 그렇게 온 곳이 이 곳 이탈리아였다. 


한 달 뒤 에밀리의 가족이 도착했다. 2m에 가까운 키의 덩치가 산만한 그녀의 남편이 그림 같이 예쁜 두 남자 아이와 함께 기차역에 도착해 있었다. 그 묘한 부조화에 나는 무언가를 감지했던 걸까. 

그로부터 일 년이 채 못된 어느 날, 에밀리가 무척 초조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I want a divorce. 유타에서 온 에밀리는 몰몬교를 믿었고, 이혼은 매우 금기시 되는 일이었다. 에밀리는 이미 상담을 끝내고, 허락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후 굳이 결과를 물어보지 않았다. 한 달 뒤 그녀의 남편은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 년 여가 지난 지금. 에밀리는 밀라노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두 아이를 데리고 산다. 나는 그녀가 얼만큼 행복한지 모른다. 하지만 아는 것 하나는 그녀가 18살 이후에 포기했던 모든 삶의 경험들을 온 몸으로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2.08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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