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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un 06. 2017

숫자 11의 추억

내가 숫자 11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많은 추억의 단서들이 그렇듯 지극히 소소하다.


초등학교 오학년이던가 내심 좋아하던 남자아이의 번호가 11번이었다. 성은 정확히 기억하지만 이름만은 또렷하게 떠오르는 활짝 웃는 얼굴의 소년. 축구를 좋아하고, 정의감에 불타던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고 똑부러진다는 평을 듣던 나는 그 아이가 내심 좋으면서도 티를 내지 못했는데, 기억에는 그 친구도 내게 호감이 있어 우리는 요즘 말로 소위 ‘썸’을 타는 사이였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마음이란 참 예쁘고 귀하고 질긴 생명력을 가져 나는 후에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는 질문을 간혹 받을 때마다 이 숫자를 대곤 했는데, 뭔가 그럴싸한 이유가 필요하다 생각했던지 앞의 이유에 붙여 1이 하나면 외로우니 1이 두 개인 11이좋다고 덧붙이곤 했다.


그 생각은 요즘에도 유효하다. 1등, 최고가 되는 것. 물론 좋을 테다. 하지만 외로운 1등 보다는 둘이 함께 있는 11이 조금 더 좋다. 합쳐 2가 될 필요도 굳이 없다. 각자 오롯이 존재하는 1이 둘 모여 11로 살아가는 일. 등수가 아니라 각기 의미 있는 여러 형태의 숫자 중 하나가 되어 마을을 이루고 사는 것. 요즘 생각하는 바라는 삶의 모습이다.


2017.05.1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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