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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un 07. 2017

학생. 그리고 선생.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대학에서 설계 강의를 한지 이 년 째이다. 5학년 졸업반(건축과는 몇 년 전 오년제로 학제가 바뀌었다) 설계 스튜디오에서 가르치는데, 전세계 10여개국의 건축대학과 연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제 스튜디오로 올해의 대상지는 쿠바의 하바나이다.

 

낯선 나라에 프로젝트를 한다는 것도 그렇고, 건물 단위의 설계를 주로 하다 마스터 플랜을 포함하는 규모가 되니 아이들은 설레여 하면서도 벅차하는 듯하다.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이십 대 후반인 친구들도 있어 다 큰 어른이다 싶은데도, 아직은 사회물을 덜 먹은 학생들이라 순수하면서도 어설픈 것도 많고 종종 사건사고를 치기도 한다.


건축과의 꽃은 아무래도 설계 스튜디오 수업인지라 대체적으로 제일 공을 많이 들이는 과목인데, 열정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친구들도 있지만, 걔중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녀석도 있기 마련이다. 가능한 잔소리는 하지 말하야지 하는 편인데, 곧 기말 크리틱이 있으니 발 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전화가 왔다. 메일로 과제 코멘트를 해 주었더니 잘 이해가 안 되었나 보다. 이런 전화를 몇 통 받고 나니 버릇이 되면 곤란한데 싶다가도 또 마음 한 켠으로는 그 마음이 이해가기도 해 그저 웃고 만다.


대학 시절부터 가르치는 일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내게도 몇몇 좋은 영향을 끼쳐 준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가르친다는 것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개개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가르친다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되었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그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십인 십색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발전시켜가며 하나의 결과물을 구현해내는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약진이 나를 더 없이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 도약의 과정에 약간의 힘을 실어 주는 것,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의 틈을 살짝 열어 보여주는 것 그런 것이 나는 선생의 역할이라 믿는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성에 차지 않아 마감을 포기하겠다는 녀석 때문에 지하철 역사 계단에 주저앉자 한 시간 내내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던 적도 있고, 학교 밖 청소년이 된 고등학교 친구 하나가(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워크샵에서 만난) 불쑥불쑥 연락이 올 때마나 있는지도 몰랐던 인생의 지혜를 쥐어짜 보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아이들이 애틋하다.


내가 경험해 온 모든 것들의 총체가 나를 이루어왔듯, 지금 내 눈 앞에서 부대끼는 이 아이들이 또 다시 나의 일부가 되어 나를 완성한다. 그래서 어쩌면 네가 나의 선생이다.


2017.06.07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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