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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16. 2019

바람 같은 OOO 팀장님

이탈리아에서 석사 과정을 끝내고, 프랑스 건축가 사무실에서 잠시 일하다 국내 대형 설계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첫 사무실은 소위 유명 '작가'의 아뜰리에였고, 그때 도제식 운영 방식은 충분히 경험했다 싶었기에 대규모 시스템 속에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새 직장은 당시 '건축계의 네이버'라 불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사무실로, 대형 사무실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포커스인 것으로 알려져 당시 건축과 졸업생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 한창 몸집을 키워가던 중인 이 사무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국 현상설계와 턴키의 전쟁 속에 뛰어들었다.


덕분에 입사하자마자 한 해에 여섯 개에 달하는 현상 설계와 턴키를 미친 듯이 해내야 했고, 동시에 경력사원에게 선물처럼 주어지는 보이지 않는 견제와 힘 겨루기에 시달렸다. 커피 한 잔 마음 편히 마실 여유조차 없던 그 시기에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회사 인근의 선릉 공원이었다. 다행히도 점심시간도 없던 아뜰리에와는 달리 대형 사무실에는 그나마 정해진 점심시간이 있었고, 얼른 도시락을 까먹고 공원을 한 바퀴라도 돌고 오는 것이 당시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모습이 몇몇의 눈에 띄었나 보다. 사무실에는 재기 발랄한 후배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 한 친구가 제대로 된 또라이라(이 단어를 즐겁게 받아들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끄적대던 소설을 자비 출판했었는데, 홍대 앞에서 여자 친구랑 팔다 남은 책들을 회사에서 강매(?) 했다. 나도 흔쾌히 한 권을 샀는데, 팬 서비스로 사인과 함께 그림을 하나씩 그려주었다.


그때 내게 그려준 바로 그림은 바로 이랬다!




그때의 나의 이미지란 이런 모습이었나 보다. 실제로 새와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말이다. 옆엔 아예 '바람 같은 OOO 팀장님'라고 명명해 두었다.


재능 많던 이 친구는 이제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을 차려 꽤 활발하게 일을 한다. 조만간 그림의 가치가 아주 높아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영광입니다 :)


2019.01.16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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