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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니 Jan 15. 2019

일을 기다린다. 일을 만든다.

건축설계 일은 기본적으로 클라이언트 잡이다. 건축과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면 가장 당황하는 지점이 이 부분이다. 학교에서 맘껏 자신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는 소위 '작가'로 교육받다, 막상 실무에 들어오면 의뢰인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건축설계는 산업분류 상으로도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 앞에 '전문'이라는 용어가 붙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문서비스업이고, 그 단어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건축업의 인식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일을 의뢰하는 건축주가 '갑'이 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축가가 '을'이 된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 돈을 쥔 자가 장땡인 것이다. 


이 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가 있다. 소위 유명한 건축가가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의 양보다 찾는 이가 많아지면, 이제 프로젝트를 선택하는 입장이 된다. 소위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건축주에게 거꾸로 설득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까지 이르는 것이 무척이나 지난한 길이라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이라는 것이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일이다 보니 본인이나 가족, 지인들이 돈이 많다면 쉽게 커리어를 트게 되지만, 반면에 자신의 힘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이들은 아주 불리한 조건에서부터 일을 시작한다. 낮은 설계비를 받고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없는 일을 하거나, 대게는 공정하지 않은 현상설계에 물적, 인적 자본을 갈아 넣는 것이다.


유난히 가방 끈이 긴 건축계라 (대학 5년에 석사 유학은 기본으로, 하버드 출신도 흔한 것이 이 건축판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고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어도 현실 무대에 올라오면, 별로 소용이 없다. 많은 이들에게 아직도 '건축가'와 '업자'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의식과 현실 세계 사이에서 괴리가 찾아온다.


오늘 사무실에 들어서며 '왜 일을 기다려야 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을 만들면 안 되나?' 

건축이라는 것이 공기를 빚어 만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서 글쓰기를 좋아하나 보다. 영혼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거꾸로 뒤집어보면 가능할 법도 하다. 


올해엔 이걸 좀 궁리해봐야겠다.


2019.01.15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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