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그녀는 어디갔는가 ...?
나의 관점이 바뀐 것인지 그녀가 바뀐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날이 갈수록 그녀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본인의 감정이 태도가 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근무하셨던 선생님이 어지럽혀둔 교실을 하나하나 정리해 가면서도
그저 내가 쓸 공간이니 감사함으로 정리하고.. 여기저기 방치돼서 흩어져 있던 교구와 물류들을 찾고 다시 정리하면서도 그냥 감사함으로 묵묵히 해나갔다. 어차피 내가 쓸 것들이니까.
하지만 처음인 내가 학원에 있는 모든 물류들을 알 길이 없고, 수업 커리큘럼에 따라 그 물류와 교구를 찾아
진행해야 하는데 일일이 다 열어볼 수도 없고, 일일이 다 물을 수도 없고 그런 건 학원 담당자들이 알려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내 몫이었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케케묵은 창고 물류들을 다 꺼내와 그녀가 던진 말은 "이렇게 물류 정리가 되면 안 된다. 그리고 물류 원장이 찾아주는 거 아니다 직접 찾으셔야 한다. 이 물류 좀 정리 부탁한다" 등의 말 들이었다.
그래도 난 큰 불만 없이 "그래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 화내서 뭐 하나 좋은 마음으로 하자" 다지며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지나가던 내게 그녀의 친절한 말투는 계속되었고, 종종 전에 있던 선생님과 비교하는 듯한 말들도 덩달아 더해졌다. "전에 있던 선생님은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서 진행했고, 직접 아이들을 키우면서 본인이 먼저 공부하고 교구를 만들던 분이시라 수업 역량이 좋으셨다. 그런 것들을 참고해서 진행하시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만드셨던 걸 버리셔서 다시 만드셔야 할 거다." 기타 등등의 말들이다.
물론, 그녀가 말하는 선생님의 역량을 내가 뭐라고 평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3개월간 그녀가 말한 선생님 참관수업 및 보조를 진행하면서 내가 느낀 건 "저렇게 수업하는 게 맞아? 아이들이 규칙이 하나도 안 잡혔네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그냥 혼자 진행하시네 마지막엔 꼭 사 오신 간식 선물들을 주시네? 학부모들은 브리핑만 듣고 선물들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흡족해하고 믿네? 이걸 학원에서는 알고 있나?"라는 생각투성이었기에 그녀가 하는 말이 내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그녀가 왜 이전 선생님을 두둔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어릴 때부터 알던 지인이었다고 한다. 어쩐지....?
그렇게 학원 생활이 흘러가면서 내가 면접 때 생각했던 그녀와 점점 다른 그녀로 다가왔다.
그래도 나는 그녀의 말에 기분 상해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어떻게든 적응기를 잘 버텨내서
나만의 수업으로 채워 보란 듯이 보여주겠노라 더 다짐을 하며 그 시간들을 지내왔던 것 같다.
인수인계라는 것도 하나 제대로 없이 오히려 전에 있던 사람이 어지러 놓은 것들을 치워 정리해 주고,
제대로 된 지도 없이 내가 손수 수업을 채워 만들어가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왔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녀의 말과 행동들이 조금은 멈추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렇게 수습기간을 지나오면서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이 밝혀졌다.
원장과 부원장으로 2명의 여자가 실질적으로 함께 운영해 간다는 건 어렴풋이 알 수 있었지만
그 둘은 원래부터 알던 지인 사이었다는 거지.
가족만 아닐 뿐인지 이곳은 애초부터 지인과의 동업으로 시작되어 또 다른 지인으로 선생님을 채워 꾸리던 곳이었고 그 지인이었던 선생님이 나가게 되면서 내가 오게 된 것이다.
아! 동업하는 곳... 가족 사업하는 곳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건만 그녀들의 깜찍한 연기에 난 속았단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뭐.. 일하는 거에만 집중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것 또한 넘겼다.
수습 기간 100만 원 남짓 한 돈을 받고 10시에 출근해 최소 9시까지 그녀와 함께 퇴근하면서
이게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래도 감사하자 라는 마음 하나로 과제 수행 하듯 하나씩 해 나갔다.
그때마다 그녀가 내게 건넨 말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래도 감사한 게 인 풋을 주면 어떻게든 아웃풋을 내주시는 게 좋아요. 힘드시겠지만 이건
선생님이라는 사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우리는 조력자일 뿐이고 그렇게 선생님의 역량이 높아지고 성장하면 많은 팬이 확보될 거예요."라는 말이다.
그때만 해도 난 그 말조차 감사했던 것 같다. '아.... 나라는 사람을 브랜드화해주기 위한 조력자...? 이렇게 버텨나가다 보면 그녀의 말대로 되는 걸까..?' 생각하며 말이다.
이전 선생이 두고 간 규칙 안 잡힌 6세 아이들과 내가 처음부터 맡게 되었던 4.5세 아이들을 맡으며 한 달... 두 달... 학원 생활에 적응하려 안간힘을 쓰면서 지나오다 보니 내리던 눈도 멈추고... 추위도 지나 벚꽃들이 흩날렸고...... 비바람과 함께 모든 벚꽃들이 진 후.... 금세 무더운 더위가 찾아왔다.
학원 생활 6개월을 버텨오니 벌써 여름과 마주한 것이었다.
무더운 여름 난 얼마나 성장했을까?... 슬기롭게 학원생활을 잘 해나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