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
어느 날 퇴근길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선생님 저는 요즘 이 일이 맞는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정규직 고용된 사람은 저 하나로 외롭게 해 오다 선생님이 오면서 많은 힘이 되고 위안이 되어 너무 좋았다...... 잘 이겨내서 오래 함께 하면 좋겠다..."라는 내용이 포함된 글들이었다.
내가 오기 전 정규 선생님으로 1분이 계셨다. 난 늘 그녀와 퇴근을 하고 서로 수업이 달라 바쁘기에 서로 깊은 정보는 모른 채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고 인사하는 정도가 다여서 친분을 쌓을 시간도 없었지만 내가 때때마다 그녀에게 시달리고 있거나 교구나 물류들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할지 몰라 헤맬 때마다 요정처럼 나타나 도움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내가 살면서 아픈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곳에서 근무하면서 이상 증상들이 시작되었다. 폐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 기침을 끊임없이 하고, 코가 콧물로 꽉 막혀 부비동염까지 생겨 울면서 잠들기는 처음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이야기했다.
"근무하는 곳에 창문이 없고, 공기청정기마저 없는 건 건강을 더 악화시킨다. 하루빨리 그곳에서 나오시거나 창문을 만들어달라 해야 할 정도이다."라고 말이다.
그녀들도 내 업무환경은 알고 있었다. 내 교실 바로옆에는 아이들 화장실이 있어서 악취에 늘 시달려야 했고, 창문이 없는 곳에 그 흔한 공기청정기 1대도 없다 보니 아무리 청소를 내가 공들여 한들 그 안에서 난 얼마나 많은 먼지를 먹고 지내겠는가...? 안 아픈 게 이상한 일이지.
그래도 이 또한 잘 버텨내면 내 몸에서 면역에 생겨 잘 적응할 거란 생각에 환경 문제 정도는 금세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지인이었던 선생님이 나처럼 아팠을 때는 대타로 수업도 해주면서 커피까지 타다 주더니 내가 아팠을 때는 "원래 비염이 있으셨군요. 창문이 없어서 죄송해요. 더 잘 챙겨 먹고 잘 관리하셔야 할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나를 배려하는 듯 배려 아닌 태도로 아파도 모든 수업은 내가 수행해야만 했다.
물론 내 수업 내가 하는 건 맞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학원이라는 곳은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대체로 해줄 사람 없기에 수강생들에 대한 일정 부담을 다 내가 견뎌야 하는구나'라고 말이다.
그렇게 아픈 시간을 보낼 때에도 문자를 보낸 선임 선생님은 그녀 몰래 뒤에서 약을 챙겨주면서 힘내라고 토닥토닥해주시던 분이었다. 그런 분이기에 마음으로 많이 의지가 되었고, 그랬던 분이 업무로 인해 고민을 하고 힘들어하시기에 덩달아 나도 흔들렸다. 학원생활 6개월을 보내오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괴롭혔고 간단한 피드백 정도일 거라 생각했던 브리프 업무는 늘 내 퇴근시간을 묶었으며, 초등학교 때 일기 숙제 검사받듯이 초안을 쓰고 그녀에게 검토받고 또 수정하고 하는 비효율적인 업무들이 날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수습기간도 지나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친절한 말투로 "선생님이 아무래도 육아 경험이 없으셔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육아 경험이 꼭 없어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만 진심이면 잘해나갈 수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건네며 그놈의 육아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매번 늘어놨다.
'육아를 하면 아이들 가르치는 역량이 있는 거고 육아가 없으면 아이들 현장 10년 있던 나는 역량을 한 없이 다져야 하는 건가?'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항상 의구심만 들었다. 그래서 듣고 흘리고 듣고 흘리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최대한 내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점점 업무에 대한 고민이 차오르다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선임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고 말을 해야 아니까 선생님의 지금 업무에 대한 고민을 한 번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말이다.
난 그동안 일을 해오면서 프리랜서 형태이기도 했기에 일하다 힘든 부분이 있어도 끝나는 지점이 있었고, 힘든 것만큼의 보상이 주어졌으며 상사와 타협이 어느 정도 상시적으로 잘 되었기에 내가 무언가 때문에 몹시 힘들다는 이야기들을 그때그때 상사에게 토로해본 적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업무에 도전하면서 나 스스로 약속한 게 있었다. '1년은 버텨보자 이전에는 코로나로 인한 임금체불로 못 지켰지만 이번만큼은 해보자 1년'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난 그녀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편하게 가감 없이 말하라는 그녀의 태도를 믿고,
그간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상담 내내 그녀는 친절한 말투였지만 내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