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묘수와 지혜를 배운 시간
한동안 잠들기 전, 반려인과 화투를 쳤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평생 배워본 적 없는 ‘잡기’ 하나쯤 익히고 싶은 마음이랄까.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화투가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화투판에서 소를 팔아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명절마다 TV 속에서 친지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장면이 그렇게 부러웠다. 우리 집의 명절 풍경은 달랐다. 거실에서 아버지와 남동생, 그리고 남성 친지들이 술상을 사이에 두고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면 부엌에서는 명절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던 여성들이 쭈그려 앉아 음식을 먹었다. 웃음보다는 체념이, 놀이보다는 의무가 가득한 풍경이었다.
반면 반려인은 어릴 적부터 화투, 장기, 바둑을 두루 익혔다. 나는 그에게 시간당 천 원을 주고, 하루 두 시간씩 화투를 배웠다. 민화투에서 시작해 고스톱으로 진도를 나갔다. 잠들기 전 배우던 화투는 뜻밖에도 인생의 묘수와 지혜를 품고 있었다. 반려인이 늘 하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대할 때면 늘 내 패부터 까보이던 나. 그런 나와 달리 상대의 수를 미리 읽고 자신의 패를 조심스레 내는 반려인의 수법은 놀라웠다. 서두르다 광박, 피박, 독박을 쓴 날에는 그제야 관계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음을 깨달았다.
고스톱은 나의 인간관계 코치였다. 자신의 욕구대로만 패를 쓰면 판이 어긋나듯, 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관계도 삐끗한다. 별것 아닌 패가 승부를 뒤집듯, 사소하다고 여긴 관계도 소홀히 하면 큰 틈이 생긴다. ‘고’를 외칠지 ‘스톱’을 외칠지는 순간의 판단력과 배짱이 필요하다. 미래의 위험을 미리 가늠하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일은 언제나 긴급하고 중요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패를 성급히 까서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상대의 수를 읽으며 관계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대등하게 마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따뜻한 자존감이 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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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Pinterest@Estelle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