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말고 네 마음부터 챙겨

엄마 세대의 '먼저'가 언제나 옳은 해답은 아니었다

by 한지원
"예쁨 받으려면 먼저 웃고, 어디서든 쓸고 닦고 움직여야 사랑받는다."
엄마 인생에서 이 문장은 성공의 공식이었다. 부모 찬스 하나 없이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던 엄마에게 그것은 절실한 생존 기술이자 삶을 일으킨 신념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보다 서로가 얼마나 존중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관계의 중심이 ‘먼저’에서 ‘함께’로 옮겨간 것이다. 나 역시 교무실 복도에서 그 사실을 배웠다. 엄마 세대의 ‘먼저’가 언제나 옳은 해답이 아니라는 진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선배 교사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쫑긋하며 배우던 신입 시절. 모든 게 긴장되고 조심스럽던 나는 여느 날처럼 국어과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복도 끝에서 과학교사 한 분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허리를 반쯤 접어 “안녕하세요!”를 외쳤다. 그런데 그분은 인사도 받지 않고 쌩하니 지나가는 게 아닌가. 순간, 심장이 요동쳤다. 내가 뭘 잘못했나?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렸을까? 자리에서 멀어 제대로 인사드리지 않아 서운하셨나? 머릿속은 추리극 현장이 되었고, 범인은 영락없이 나였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내일, 어떻게 그 선생님을 만나지? 인사를 또 안 받으면 어쩌지?….


다음 날, 같은 복도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그분이 먼저 활기차게 웃으며 지나갔다. 허탈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한밤중에 혼자서 기승전결을 만들고, 나에게 못나게 굴었다. 사건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눈치가 빠른 건 종종 유용하지만, 눈치로 상대를 해석하는 순간 내 마음은 쉽게 지옥이 된다는 것을.


또 한 번은 새 학기 자리 이동이 있던 날이었다. 엄마의 가르침을 따라 내 책상정리는 미루고 교장, 교감, 학생주임 선생님 책상부터 정성껏 닦았다. 누구도 말리진 않았다. 다만 신기한 구경한다는 표정이었다. 조직에 자연스럽게 섞이기를 원했는데, 오히려 어수룩한 신입으로 도드라졌다. 예쁨 받고 싶다는 욕구가 과한 호의로 표현된 순간, 엄마의 충고는 사회생활 만렙의 효력은커녕 엉뚱하게 소원 쿠폰만 남발한 격이 됐다.



당찬 기질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움츠려 있던 20대를 돌아보면, 안쓰러움과 애틋함이 함께 밀려온다. 상대의 표정과 형편을 읽는 동안 정작 중요한 내 마음을 팽개쳤다. 관계란 상대에게 호의를 베풀기 전에 내 역할과 마음부터 살피는 자존감 위에서 편안하고 안전하다. 먼저 웃되, 나를 낮추지 말 것. 부지런하되, 내 역할을 잊지 말 것. 오늘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불러 세워 등을 토닥이며 말해주고 싶다. 눈치 보지 말고 네 마음부터 챙겨. 너를 다정하게 대하는 게 먼저야. 너를 알아가는 자존감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니까라고.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미지 출처: Pinterest@Sj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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