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충분해야, 관계도 충분하다

나는 늘 주는 사람이었다

by 한지원
“남에게 하나를 받으면 너는 열을 줘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말은 내 안에서 하나의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 말은 내 성실함의 증거였고, 동시에 내 삶을 잠식한 굴레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으면 곧바로 ‘누구에게 나눠야 할까’를 계산했고, 기쁨보다 죄책감이 먼저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늘 주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와의 짧은 통화 후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 속에서 문득 한국비폭력대화센터가 떠올랐다. 그날 이후 비폭력대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관계에 대한 갈증은 나를 2과정까지 이끌었고, 이어서 자기존중대화와 존중대화 지도자과정을 밟았다. 관계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상담 코칭을 고민하던 중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를 소개받아 그룹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열다섯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마음의 구조를 배우고, 그 안에서 각자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두 번째 시간이었다. 열린 의식과 닫힌 의식에 대해 배우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늘 그러셨어요. 남이 하나를 주면 나는 열을 줘야 한다고요. 그런데 이제는 너무 힘들어요. 정말 필요한 걸 받아도 ‘누구에게 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 의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열 명에게 줘도 하나가 돌아오기 어려워요. 하나라도 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이미 대단한 겁니다.”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낯선 지진처럼 세상이 흔들렸다. 아빠의 셈법과 의사의 분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평생 관계의 수학을 잘못 배워온 셈이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호의를 그저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여긴다. 정말 필요했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대부분은 호의를 되돌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안의 무너진 건물들 사이를 걸었다. 오랫동안 쌓아 올린 신념은 무너져 있었고, 그 잔해 속에서 처음으로 내 마음의 모양을 들여다보았다. 잘해줄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주면 줄수록 비워지는 관계. 채워지지 않은 채 남을 채우던 나의 방식이 얼마나 피폐했는지를 그제야 알았다. 이제는 안다. 나를 먼저 채워야 타인에게도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걸. 내가 편해야 남도 편하다는 걸. 단단한 관계는 ‘열을 주는’ 희생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충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걸.






*AI 학습 데이터 사용 금지

*이미지 출처: Pinterest@S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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