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지 않던 질문을 건넨 소설과 소설가들
나에게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는 다그치는 엄마와 쓸쓸하게 응대하는 딸의 답변에서 출발한다.
"너희가 가족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될 수 있어?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 자식을 낳을 수 있어?"
"엄마 같은 사람들이 못 하게 막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그의 딸 그리고 딸의 동성 연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딸에 대하여》는 소설 중반부부터 모녀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둘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조정자로 개입하게 된 딸의 동성 연인과 엄마와의 미묘한 관계도 흥미롭다. 후반부로 갈수록 엄마는 세상의 관습에 저항하는 딸의 고달픈 현실을 마주하며 생각의 균열이 일어난다. 문장이 속도감 있게 읽히고, 상황 묘사 또한 세밀하다. 이 소설은 독자를 인물들의 대화 한가운데로 초대해, 같이 울고 분노하게 만든다.
나는 시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제외하면 장편소설은 늘 어렵게만 느껴졌다. 소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다. 그러다 5년 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시작으로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에 이르러 비로소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소설을 읽지 못했던 건 문학적 감수성의 부족이 아니라, 내 삶과 맞닿은 이야기를 만나지 못해서였다는 것을. 김혜진 작가의 문장에는 여성의 일상과 현실, 그 속에서의 숨 가쁜 선택들이 생생히 살아 있었다.
김혜진의 또 다른 소설을 찾다 《9번의 일》을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권고사직을 거부한 채 회사에 남아 계속해서 일을 해 나가는 '9번'이라 불리는 한 남자의 일과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통신회사 설비기사의 일을 작가가 직접 경험한 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노동자 환경이 이 정도로 비참하고 치욕적일 줄이야. 통신회사 설비기사로 26년을 일한 '9번 남자'가 외지로, 더 외지로 밀려나는 과정을 참혹하고 억척스럽게 전달한다. 다큐멘터리보다 생생하면서도 흥미롭게 노동을 풀어낸 김혜진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이후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를 읽으며 또 한 번 놀랐다. 이게 작가의 첫 소설이라니. 그의 글에는 사소한 대화 속에 스며든 질투, 미움, 부러움 같은 감정의 결들이 너무도 정직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감정의 결을 이토록 세밀하게 짚어내는 작가가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 소설이 안 읽혔던 이유는, 서사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통해 나는 비로소 문학의 언어로 나 자신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화자들이 자꾸 내게 묻는다.
'넌 어떤 사람이야?'
'어디로 가고 있어?'
'사람을 알아?'
'삶이 뭐라고 생각해?'
세상이 하지 않던 질문들을 소설이 건넸다. 그 질문들은 나를 멈춰 세우고, 나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지금까지 나를 구성한 가족과 학교, 사회에서는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사회가 어떤 사람을 원하며, 어떤 게 성공적인 삶인지가 중요했다. 진짜 중요한 나의 존재와 삶의 방향과 목적, 인간 실존 및 그 뿌리가 되는 근원적 정의를 건드린 적은 없었다. 소설의 화자들이 내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이전까지 나는 세상의 정답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삶으로 진화하고 있다. 나에게 묻는다는 건 타인이나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다운 선택을 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세상의 무수한 목소리 중에서 내가 원하는 목소리, 나를 지키는 목소리를 찾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깊고 내밀한 목소리에 귀와 마음을 여는 고요가 필요한지 모른다.
우리는 매일 혼란스러운 아우성 속에 살아간다. 길을 잃지 않으려면, 매 순간 내가 원하는 삶과 방향을 선택하려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냐고, 가고 싶은 길이냐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이 맞냐고. 세상은 정답을 말하지만,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사실 정답이 있기는 한가 의심스럽다. 세상이 주장하는 정답이 아닌 내 안의 진실을 발견하려면, 스스로에게 밀도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오롯이 나를 지키는 단단한 해석자의 삶은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타인과 세상의 기준이 아닌 고유한 나의 목소리를 경청할 때, 겨우 미세한 직관의 소리가 길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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