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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_당신이 마음에 드네요

영화 2. 그리스인 조르바_이분법적 규범을 거부하는

by 윤소리

제대로 자유인을 만났다. 조르바는 무결한 인간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인물이다. 책으로만 인생을 배운 지식인 버질과 달리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조르바의 대화는 첫 만남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먼저 조르바는 자기 필요를 주도적으로 성취한다.

“당신이 마음에 드네요. 날 데려가 주소. 어떻소?”

어쩌면 이렇게 주도적이며 매혹적으로 자신을 어필할까. 담배를 권하며 모두 가지라는 버질에게 “No, thank you"와 "Only one"으로 필요한 것만을 가진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는 손과 발이 있고 머리가 있으니 당신이 필요한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당차게 대꾸한다.


goeul.kr 강진고을신문: 이현숙 기자의 영화로 읽는 명작소설 48 그리스인 조르바

반면 버질에게 직업을 묻고 작가라고 대답하니 생각이 많은 게 당신 문제라며 자신을 고용할지 말지를 재촉한다. 버질에게 "예스"라는 답을 듣자마자 악수를 청하며 하는 말이 "선생, 당신은 행운아요. 조르바가 가서 실패한 광산은 없어요."라며 선수를 친다. 고용주인 버질이 "당신은 센토리를 연주하고요."라는 말에 "일할 때는 당신에게 고용된 사람이지만, 연주하고 노래할 때 내 주인은 바로 나"라며 자신이 자유롭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게 계약하겠냐는 조르바의 말에 그럽시다로 응답하는 상황도 흥미롭다.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 상호존중의 계약은 원천 봉쇄되었기에 자유인으로 사는 일은 요원한 것만 같아 씁쓸하다. 영화가 지금보다 더 암울한 1930년대 계급주의사회를 보여주는 걸 기억하면 자유를 실현하는 일이 비단 사회구조적 문제만이 아닌 개인의 지혜와 용기를 동반하는 일임을 곱씹게 한다.



두 번째, 조르바는 조국이나 신, 규범에 매이지 않는다. 선과 악, 신과 악마, 육체와 감정 등 국가와 종교, 사회규범이 이분법으로 분리한 것들을 거부한다.


“난 조국을 위해 많은 일을 했소. 당신이 들으면 소름 끼칠 만한 일들이지.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했소. 왜냐고요? 그들은 터키인이거나 불가리아인이었으니까! 난 형편없는 바보였소. 이제 난 사람을 볼 때 그는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요. 그리스인, 터키인이 무슨 상관이죠? 나이 먹어가면서 난 목숨을 걸고 맹세했소. 이제 그런 건 묻지 않겠노라고... 좋은 것, 나쁜 것이 뭐가 다르죠? 우린 결국 같은 방식으로 죽어요. 벌레들의 먹잇감이죠.”

dentin.kr [책]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는 지금 자유롭게 살고 있는가

“조르바, 신의 가호가 있길...” 럼주를 들며 계약을 축하하는 버질에게 조르바는 “악마의 가호도요, 대장!”으로 응수한다. 오랫동안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조르바의 제안들은 신선하고 공감이 되었다. 조르바가 처참한 전쟁을 겪으며 민족주의와 인간분리정책의 환상에서 벗어났다면, 나는 페미니즘을 만나면서 종교와 민주주의, 자본주의의 환상을 떼어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조르바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 경청의 대가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주인 호텐스 부인의 외로움을 알고 버질에게 그녀에게 춤을 청하는 게 예의라고 권한다. “대장, 춤을 청해 봐요. 내가 대신 말해줘요? 예의상 좀 해봐요.” 권하면서도 호텐스 부인에게는 “저분이 당신과 춤추고 싶다는군요. 그런데 수줍어하셔서......” 라며 선의의 거짓말을 건넨다. 피곤할 텐데도 춤을 못 추는 대장 대신 호텐스 부인과 신나게 춤을 추고, 그녀의 하소연과 자랑을 부추기며 듣는다. 어떤 상담사라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법한 내담자를 다루는 솜씨가 가히 천재적이다.


m.blog.naver.com [영화리뷰]그리스인 조르바(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마지막으로 조르바는 추악한 인간의 욕망을 간파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는 발 벗고 나선다.

누군가의 추악한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본 사람이다. 조르바는 자신의 추악함을 알기에 타인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불의에 맞선다. 종교의 허상에 침을 뱉으면서도 종교인과 자유롭게 어울리며, 당시 사람 수에도 끼지 않던 여성, 과부의 생명이 위협받는 현장에 앞장서 뛰어든다. 진정한 자유인이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장에서 결코 침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m.blog.naver.com [영화리뷰]그리스인 조르바(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소제목,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시인 최지인의 시집 제목 인용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시집 중 <숨>이라는 시를 기쁘게 소개합니다.



나아진다는 게 뭘까

여러날 동안

여러날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들


면담이 끝났다

그만 둘 날이 정해졌다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지진이 났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우리 곁을 맴도는 바람 잠시 머문 햇살 이사를 앞둔 사람

네가 없는 여기


내가 떠난 건 네가 아니야

아프지 말자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알 수 없는 마음은 그냥 두자


*

아니야, 그건 내 이기심이야


*

누군가 말했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유는 없다

우리 시대 지식인들은 모든 인민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무엇에 공모하고 있는가

이 구미 자본주의에

이 신자유주의에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둔 것이다


꽁꽁 언 고기가 녹고 있다


*

아름다운 것은 아프고

아픈 것은 아름다워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이 밤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가만히

가만히



***<<그리스인 조르바>> 책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책과 영화는 다른 측면이 많습니다. <<여성을 모욕하는 걸작들>> (문예출판사)에 책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비평이 있습니다. 다른 측면도 참고하세요.


〈말괄량이 길들이기> (셰익스피어), 『달과 6펜스』(서머싯 몸), 『안녕 내 사랑』(레이먼드 챈들러), 『위대한 개츠비』(F. 스콧 피츠제럴드), 『나자』(앙드레 브르통),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 〈날개〉(이상),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국가에서 쓰인 작품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첫째, ‘걸작’으로 불리며 오래도록 읽혔다는 점. 둘째, 모두 여성을 모욕하여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는 점.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소위 ‘고전’, ‘걸작’으로 소개되고 읽혀온 이들 작품을 비판적으로 재독해하여 고전, 걸작의 조건을 질문한다. 핵심 질문은 두 가지다. 문학을 지배하는 시선은 누구의 시선인가. 문학 작품 속에서 여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여덟 명의 저자가 여성의 관점에서 (여덟 편의) 걸작을 다시 읽는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의 시도는 고전의 의미를 확장적으로 재정의한다. 고전은 의미가 고정된 채 절대적 권위를 뿜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거리를 풍부하게 가진 작품이야말로 고전이라 불릴 만하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은 동시대의 관점에서 고전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해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7482213>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박정훈, 김용언, 심진경, 이라영, 조이한, 정희진, 장은주| 문예출판사| 2023. 02. 20.





***맨 위의 영화감상 주의: https://naver.me/FpZ9pgta (바로 안 열립니다ㅠㅠ 네이버 인디극장에서 그리스인조르바 필링박스 클릭하세요. 영화감상이 가능합니다)


*커버 이미지 출처: Pinterest@ EnergeticMatrix���� inJoyAllWays Fly Free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더 많은 영화의 사진과 내용은 다음 카페 여성말글삶연구소https://cafe.daum.net/everydaywrite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목록, 영화야 놀자에 “자유인 조르바”나 “그리스인 조르바”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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