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서 시작한다, 나의 반성 일지
올 초 새로운 여러 목표 중 필사를 추가로 계획했었다.
독서를 하며 책의 주옥같은 문장을 수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필사를 통해 그 의미가 더 마음에 와닿고 오래 기억에 남음을 느끼며 본격적인 필사를 계획한다. 아울러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양장 노트에 이쁜 글씨체로 남겨보는 계획도 세워본다.
그로 인해 그동안 연습하고 내 글씨체의 근간이 되는 정자체, 흘림체 등 여러 손글씨체를 고민하던 중 '미꽃체' 글씨체에 매료되어 책도 구입하며 열의를 불태운다.
그런데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어려움이 느껴져 결국 온라인 수강을 하게 되었다. 역시 강의를 들었어야 했다.
하나에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인지라 처음 시작하자마자 4~5시간 씩 한자리에 앉아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몇 페이지 가득 그리길 반복했었다.
이틀 정도 지나 다음 강의로 진도를 나가고 역시 또 다음 강의로 새로운 글자를 그린다. 그런데 의욕이 너무도 앞섰음이 느껴지는 게 하루 몇 시간씩 연습해도 곧은 선 하나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나를 보며 상실감마저 몰려들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서예와 캘리그래피에 노력한 게 몇 년인데 이 선 하나 제대로 못 그리지?'
손 놓은지 몇 년은 되었지만 왠지 모를 '자괴감, 상실감, 무력감'이란 3종 세트가 엄습해 오려 할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밀려온다.
'수강 기간이 언제까지지?'
그렇다. 1년이란 기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왜 난 단기 수강권이라도 끊은 것처럼 진도에만 집착하며 달필을 꿈꿨던 걸까?
이미 붓을 들고 손 글씨를 써왔었던 내가 설익은 밥을 차려 먹으려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험난한 여정임을 알고 있었기에 한 강좌를 일 년이란 긴 시간으로 끊었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 글자를 하나하나 살펴본다.
다들 노트에 선과 동그라미를 그려보자
아무리 잘 써보려 노력해 보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직선을 그어도 곧은 선이 아닌 흔들림이 보이거나 굴곡이 보이고 동그라미는 제각각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수십 페이지를 써왔음에도 같은 '가'를 쓰더라도 동일하지 않은 '가'를 보게 된다.
기본이 안 잡혀 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그러면서 이 글씨체는 기본만 잡히면 80%는 달성하겠단 느낌이 밀려온다.
'가, 나, 다, 라, 마, 바, 사' 만 가지 고도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다음 진도를 나가도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6개월이 되던 1년이 되던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이라는 걸 그동안의 삶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잠시 어릴 적 기억으로 돌아가 본다.
중학교 2학년, 어릴적부터 배우고 싶었던 중국무술(쿵후)을 끝내 배우기 시작했다.
언 일 년 넘게 수련을 했지만 유단자 형들의 멋진 동작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이 넘어 유단자 심사를 보던 중 타 도장 사람과 대련을 하며 실컷 두드려 맞은 기억이 있다.
집에 돌아와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그 후로 도장 수련 외에 하루 세네 시간은 운동에 매진했던 것 같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후에도 군대 가기 전까지는 꾸준히 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컨테이너 차량 뒷문을 열고 1톤 화물차를 컨테이너에 붙이기 위해 그 사이에서 유도하고 있었다. 트럭과 컨테이너 차량 사이가 2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왔었다.
차량은 그대로 후진해 컨테이너 차량 후미를 들이 받았다. 난 그 순간 그 사이를 뛰어올라 대형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 모두 놀라며 건넨 말은 그 높은 차 사이를 어떻게 순식간에 뛰어오를 수 있느냐였다.
나 또한 놀랐지만 무의식중에 발현된 행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을 함에 있어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득 달필의 꿈에만 빠져 현실을 망각했던 내게 쓴소리 한마디를 던지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모든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마음속에 새겨 넣는다.
Instagram@jjvoka_,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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