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지금 詩가 필요하다

넌지시, 시를 건네다

by 보키

나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아빠는 늘 우리 둘만 있을 때면 물으셨다. "무슨 불만 있냐?" 말도 없고, 표현도 안 하는 딸에 대한 답답한 토로였으리라. 나 역시 그런 내가 답답했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그런 나에게, 대본에 적힌 대사에 어울리는 감정을 입혀 연기하면 되는 라디오드라마 연기는 마치 감정을 풀어내는 해우소 같았다. 그때부터 이 즐거운 일을 할 수 있는 '성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성우 수업을 받기 시작한 후 그때 마구 풀어냈던 연기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은 쉬이 울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켜켜이 쌓였던 감정이 어떤 계기를 만나 비로소 터진다. 나는 화자의 상황, 처지, 대상과의 관계성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자아도취적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기가 아닌 '말'을 해야 했다. 그러려면 화자를 이해해야 했고 화자를 이해하려면 나를 알아야 했다. 연기는 '이해'의 예술이었고 '소통'의 공부였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함과 동시에,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꼭 필요한 공부라고 믿으며 지금까지 성우 공부를 지속해오고 있다.

그중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훈련으로 '시낭송 수업'이 있었다. 나는 늘 시가 어려웠다. 함축적인 시어 안에 정답을 맞혀야 할 것 같은 강박 관념이 있었다. 정답을 요구받는 교육 과정의 산물이었으리라. 더구나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암송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컸다. 머릿속으로 그림도 그리고, 손으로 여러 번 써가며 나만의 외우는 방식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수없이 읊조리다 보니, 내 이야기가 떠오르는 시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치, 어떤 노래가 내 이야기처럼 들리는 순간처럼.

정답 찾기를 멈췄다. 시의 한 구절이 내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면, 나는 그 시를 붙잡아 나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아 '스토리텔링 시낭송'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부드러운 톤으로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려 시를 표현했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담기 시작하자 본연의 목소리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나에게 닿는 울림이 있었고, 그 울림은 저절로 청중에게도 전해졌다. 수수께끼 같던 시는 언어가 되어, 우리를 연결시켜 주었다.

시낭송을 하기 전, 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렇게 적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음을. 질문하고, 선택하며,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 여정이ㅡ 곧 누군가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나는 시를 통해, 나를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하며, 넌지시 건넨다.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이 시를.
그리고 언젠가, 당신의 이야기가 담길 그 시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