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둘째 주의 마들렌
한밤의 통증은 언제나 외롭다.
낮에 느끼는 통증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데, 아무도 없는 적막 속에서 혹시나 주변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봐 혼자 조용히 앓다 보면 힘껏 깨문 입술 사이로 스멀스멀 외로움이 스며든다.
한참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뿌옇게 동이 틀 무렵 제풀에 지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아프다는 말만 계속 늘어놓고 있는 나의 글이 이제는 우습지도 않아서 몇 주간 마들렌 만드는 일을 쉬어볼까 생각도 하다가 크게 아프지도 않은데 자꾸 쉴 생각을 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도 하다가 이도 저도 못 하고 재료 준비만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결국 원래 계획했던 마들렌은 도저히 만들지 못할 것 같아서 다음 기회로 미뤄버렸다.
자꾸 계획이 어그러지니 괜스레 부아가 치밀어서 아침 운동도 거르고 멍하니 누워있다가 부엌에 나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냉장고 한편에 딸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몇 주 전부터 인스타에서 이제는 딸기가 정말 끝물이라고 내년을 기약한다는 글을 수없이 보고 있었는데, 또다시 나타난 딸기의 존재가 마치 매주 아프단 얘기를 반복하면서 마들렌을 올리고 있는 내 모습과 겹쳐 보여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오늘은 딸기를 이용한 홍차 딸기크림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딸기의 제철은 과연 언제일까?
사실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재배종 딸기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품종인데, 그 탄생의 경위가 참 아이러니하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식물학자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칠레의 해안가를 뒤지며 야생 딸기 종자를 채집하며 기록했는데, 사실 그는 프랑스 육군 정보국 소속의 스파이였다.
당시 프랑스의 국왕인 루이 14세는 손자이며 스페인의 국왕이었던 펠리페 4세의 왕권을 유지하여 스페인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 스페인에 대한 정보를 다방면으로 수집하고 있었는데, 칠레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 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야생 딸기 탐구를 핑계로 식물학자인 프레지에를 스페인에 파견한 것이었다.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프레지에는 파리로 돌아와 그동안 기록한 칠레의 야생 딸기에 대한 책을 출판했고, 이후로 유럽의 식물학자들이 딸기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하면서 원래는 먹을 수 없어 관상용으로 사용하던 칠레의 야생 딸기 종자를 개량하여 지금처럼 식용 가능한 재배종이 탄생하게 되었다.
임무를 숨기기 위해 위장으로 기록한 야생 딸기에 대한 정보가 실질적인 연구로 이어지면서 지금과 같은 재배종 딸기의 탄생으로 이어졌으니 참 세상일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딸기는 20세기 초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당시에는 노지에서 재배되어 5~6월경 출하되는 초여름 품종이었는데, 1980년대 후반 비닐하우스 농가가 급증하면서 ‘하우스 딸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일본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일본 품종을 재배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고유 품종을 개발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딸기의 대부분은 국산 품종이다. 특히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에서 개발된 ‘설향’ 품종은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딸기 중 85% 정도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에 처음 전해진 딸기는 초여름이 제철인 품종이었지만, 비닐하우스 보급과 맞물려 ‘하우스 딸기’가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고 겨울철 하우스 재배가 가능한 딸기 품종 개발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사실상 딸기의 품종에 따라 제철이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요즘에도 노지 딸기를 재배하기 때문에 5월까지는 어렵지 않게 딸기를 찾아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겨울철 딸기보단 맛과 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던 딸기도 조금 당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잼처럼 진득하게 끓여낸 뒤 크림치즈와 섞고 반건조 딸기를 넣어서 향긋한 딸기 크림을 만들었다. 마들렌 반죽에는 피스타치오를 넣을까 하다가 좀 더 봄의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실론 홍차와 작년에 절여둔 한라봉 필을 섞어 주었다.
퐁실하게 부푼 홍차 마들렌에 새콤달콤한 딸기 크림을 잔뜩 짜 넣으니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상큼하고 고급스러운 봄 향기를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딸기의 한철이 흘러가듯 나의 아픔도 조금씩 흘러가길 바라며, 올봄의 마지막 딸기 마들렌을 즐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