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울새 Mar 01. 2023

나의 삶은 마들렌

나는 왜 마들렌을 만들까?

오늘도 잠이 쏟아졌다.


계절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요즘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만 자는 때가 많다.


회복을 위한 휴식이라 생각하면 그다지 아까운 것도 없는 시간이지만, 가뜩이나 느릿느릿한 내 움직임을 고려하면 안 그래도 짧았던 하루가 또다시 절반으로 줄어든 기분이 든다.


투병을 시작하고 7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내 몸은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한두 달 만에 30킬로그램 가까운 몸무게가 빠져서 반년이 넘도록 외출 자체를 하지 못하기도 했었고, 두 번의 계절이 바뀌고 겨우 집 밖을 나섰을 때는 10분 남짓의 짧은 산책이 너무 힘들어 구토를 내뱉고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온몸의 근육이 말라서 달리기는커녕 제자리 뛰기조차 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번에 30분 이상 쉬지 않고 걸을 수 있고 신호등 불이 바뀌려 할 때 종종걸음으로 가볍게 뛰어갈 수도 있을 만큼 회복했다.


남들 눈엔 뭐가 바뀐 건가 싶겠지만,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아주 길어야 일이 년이면 끝날 것 같던 투병 생활이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던 몇 년 전, 나는 마들렌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들렌을 만들기 1년 정도 전, 건강을 이유로 많은 것을 포기하다 보니 생활에 낙이랄 게 없어져서, 예전처럼 과자나 구워볼까 하는 생각으로 20만 원도 하지 않는 저렴한 오븐을 구매했는데, 결국 과자를 구워내는 건 실패했다.


너무나 생경했던 주방 앞에서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과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던 체력 덕분에 제대로 반죽을 만들기도 힘들었고, 두 번 정도 더 처절한 실패를 맛본 뒤로 한동안 오븐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들렌을 만들어보게 되었는데, 건강이 조금은 회복을 한 것인지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투병 이후 매번 포기만 거듭해 왔던 내게, 마들렌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은 더없이 소중하고 감격스러웠다.


사실 마들렌은 내가 제과를 처음 접했을 때 만든 품목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레시피대로 집에 있던 가스 오븐을 이용해서 틀도 없이 만들었던 게 내 첫 제과이자 첫 마들렌이었다. 어쩌면 다시 처음 시작하는 품목이 마들렌이라는 게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주 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혼자 마들렌을 만들면 몸 상태가 안 좋은 어느 날에 쉽게 포기해 버릴 것 같아서, 남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렇게 마들렌을 기록하는 ‘거울새’가 탄생했다.



마들렌을 기록하는 일은 현재 내 삶에 대한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존재가 이렇게 세상에 존재했다는 나의 외침이다.  투병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결국 버텨내고 이겨낼 것이라는 내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마들렌을 만들고, 그 안에 나의 생활을 담는다. 지금의 아픔과 한계를 담는다. 그리고 나의 욕심을 담는다.


치열하기만 한 세상살이의 길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삶은 더없이 찬란하기만 하다. 나 또한 저런 빛나는 삶은 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차오르지만, 지금만큼 마들렌을 만들고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더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조그마한 욕심이 생겨서 브런치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지나친 욕심이 될지 혹은 새로운 기회가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나는 언제나처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해내 보려 한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그랬듯 누군가 나의 기록을 읽고 조금의 위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큰 행복을 느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들렌을 만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