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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새 Mar 02. 2023

바질 고구마 마들렌

2023년 1월 첫째 주의 마들렌

왜 눈물이 났을까?


인스타그램에 올린 2022년 마지막 글에 많은 분께서 정말 감사한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셨고, 나 또한 답글로 새해의 희망을 이야기했었는데, 어쩌면 남들은 너무나 쉽게 해낼 만한 아주 간단한 일조차 해내지 못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다.


워낙 눈물이 적어서 문제가 있는 건가 고민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 요즘은 조금만 슬픈 사연을 봐도 눈물이 나서 내 눈물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병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린 건 아마 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이후로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전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는데,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자마자 일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애써 참으려고 해보았지만,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근데,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 나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마음이 한결 시원해졌다. 울기 전과 울고 난 후 현실은 여전히 똑같았지만, 눈물과 함께 응어리진 힘든 마음이 조금은 씻겨 나갔는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쩌면 진짜 강한 사람은 슬퍼서 눈물이 날 때 꾹 참고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아니라, 슬플 때 마음껏 울면서 슬픔을 비워내고 다시 번쩍 일어설 수 있는 말랑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내게만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날따라 유독 힘들었던 이유는 결국 ‘몸이 안 좋아서’였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중이었고, 그걸 모르고 있던 내가 평소처럼 움직이려다 보니 몸이 평소보다 더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밤부터 열이 좀 나는가 싶더니 다음 날 40도에 육박하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그 후 하루를 꼬박 고열에 시달리고서야 다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독감을 앓을 때만큼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 덕분인지 평소보다 조금은 빠른 속도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실 한 주 정도 푹 쉬고 기가 막히게 멋진 마들렌으로 2023년의 처음을 기념할까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며칠 멍하게 누워 생각해 보니 이 또한 매번 올리는 마들렌의 연속인데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그냥 좀 더 간단한 마들렌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오늘도 마들렌을 만들었다.


평소 고구마가 들어가는 요리를 거의 안 하다 보니 올겨울엔 딱히 고구마를 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연말쯤 집주인 분께 신세 진 일이 있어 감사한 마음에 커피 원액을 추출해 드렸다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군고구마를 몇 개 받게 되었다.


집주인 분은 채식을 하셔서 아침을 고구마로 드신다고 하시는데, 매일 고구마를 드시는 만큼 고구마를 선택하는데 특별한 비법이 있으신지 건네주신 고구마의 당도가 정말 심상치 않았다.


나는 의외로 단맛이 너무 강한 걸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 입 안에 고구마를 넣자마자 단맛이 너무 강렬해서 탄성과 함께 미간을 살짝 찌푸릴 정도였는데, 설탕을 아예 넣지 않으면 되레 엄청난 디저트 재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 만든 마들렌은 바로 바질고구마 마들렌이다.


언젠가 책에서 바질과 고구마의 조합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마카다미아를 잘게 다져 넣은 바질 베이스의 마들렌에 버터와 고구마를 잘 섞어 만든 필링을 잔뜩 짜 넣어주면 괜찮은 조화를 이룰 것 같았다.


바질은 건조 바질을 곱게 빻아서 사용했고, 고구마는 다른 것 없이 버터만 살짝 더한 후 섬유질 제거를 위해 여러 차례 체에 내려 준비했다.



마들렌을 완성하고 조금 놀라웠던 건 바질과 고구마의 조화였다. 바질을 마들렌의 주재료로 삼은 건 약간 모험이었는데, 마들렌의 주재료와 위화감 없이 어울릴 건 분명했지만, 허브 특유의 화한 느낌이 너무 강해지면 거슬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완성된 마들렌은 약간 화한 맛이 감돌았지만, 놀랍게도 고구마 필링이 그 맛을 아주 적절하게 잡아주었다. 설탕을 넣지 않았음에도 단맛이 꽤 강했는데, 바질 마들렌과 만나면서 단맛이 줄고 바질의 화한 맛은 잡아주니 꽤 매력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오도독 씹히는 마카다미아도 한몫해서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함보단 꾸준함을 잃지 않은 수수한 마들렌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행복은 어쩌면 올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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