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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울새 Mar 02. 2023

생강 마들렌

2023년 1월 둘째 주의 마들렌

어릴 땐 책을 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멀리했더니 한 번 멀어진 사이를 다시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도서관을 다녔던 대학 시절 이후로는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가, 요양을 시작하고 2년쯤 지날 무렵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동네 도서관을 방문하면서 다시 책과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다.


각 지자체의 도서관은 생각보다 알차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지자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의외로 보유 장서 수도 꽤 많았고, 종류도 다양한 데다 매달 일정 권수의 희망 도서 구매를 요청할 수 있어서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신간 도서도 어렵지 않게 빌려볼 수가 있었다.


물론, 책을 읽는 데도 꽤 많은 체력이 필요해서 몸 상태가 안 좋을 땐 도서관 방문은 꿈도 못 꿨지만, 요즘은 나름 평온한 상태라 종종 도서관에 방문해서 관심 가는 책을 빌려오고 있다.


도서관의 장점은 모름지기 원하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다른 책이 되레 흥미를 끌게 되는 아이러니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시나 제과 관련 도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조선 시대 과자 이야기가 흥미를 자극해서 바로 대여했다.


조선 시대 음식 관련 책을 보다 보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가 생각과는 아주 다른 식재료 혹은 음식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우리 민족의 탄생부터 함께했을 것 같은 고추나 일제 강점기쯤에 야 들어왔을 것 같은 카스텔라가 바로 그렇다.


고추는 마늘과 더불어 우리 음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향신채 중 하나인데, 사실 조금 생뚱맞게도 중부 아메리카를 원산지로 하는 외국 친구이며 우리나라에는 17세기 초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고 한다.


반면 카스텔라는 우리나라에 최초의 양과자점이 생겼던 1920년대 초쯤 전래하였다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대략 18세기 초의 조선시대부터 존재해 온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과자였다.


숙종이 말년에 입맛을 잃었을 때 중국에 갔던 사신단이 선교사들에게 전수받은 레시피로 서양의 계란 떡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구현하진 못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바로 카스텔라다.


당시의 카스텔라는 계란 노른자와 밀가루 그리고 설탕만으로 만들어졌는데, 이후 일본을 통해 나가사키 카스텔라가 한국으로 전해지면서 ‘가수저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절이듯 설탕을 쏟아붓고 풍성한 거품 없이 노른자만을 이용해서 만들었기에 지금의 카스텔라와는 사뭇 맛이 달랐겠지만, 실학자 박제가가 친구인 이덕무와 카스텔라를 놓고 싸운 적도 있다고 하니 묘하게 카스텔라가 먹고 싶어졌다.


결국 카스텔라를 주제로 마들렌을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오늘 만든 마들렌은 바로 생강 (카스텔라) 마들렌이다.


원래는 나가사키 카스텔라 스타일로 자라메 설탕을 깐 폭신하고 묵직한 마들렌을 만들려고 했는데, 문득 겨울의 느낌을 살려서 생강을 넣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생강을 넣은 마들렌을 계획하게 되었다.


카스텔라는 마들렌과 비슷한 재료를 사용하지만, 재료의 비율이나 제법에 차이가 있어서 어느 정도 레시피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우유와 청하를 추가하고 묵직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박력분과 강력분을 섞어서 사용했다.


자라메 설탕은 굵은 입자의 특수 설탕으로 고온에서도 잘 녹지 않아 오도독한 식감을 주는데, 근본은 설탕이기 때문에 단맛이 과해질 가능성이 있어서 양을 적게 조절했고 바삭한 식감의 크럼블을 올려 부족한 식감을 채워줬다.


생강은 생강청에 든 생강을 아주 곱게 다져서 반죽에 섞어주었는데, 생생강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만약 생생강을 사용하면 쌀뜨물이나 식초 물에 넣어 아린 맛을 제거하는 게 좋다.


크럼블은 밀가루와 아몬드 가루, 설탕 그리고 버터를 섞어 만들었는데, 계란을 더하면 맛은 좋아지겠지만 바삭함이 부족해질 수 있어서 제외했다. 조금 더 가벼운 식감을 주기 위해 베이킹파우더를 소량 넣었고 향을 더하는 계핏가루도 조금 섞어 주었다.



완성된 마들렌은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는데, 묵직하면서도 촉촉한 살결이 한없이 부드럽게 느껴졌고 바삭한 크럼블과 오도독한 자라메 설탕이 식감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무엇보다 향긋한 생강 향이 너무 기분 좋게 느껴졌는데, 은은하게 풍기는 계피 향과 뒤섞인 매력적인 그 맛에 어머니조차 감탄하셨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잘 기록해 두었다가 올해 마들렌 여기저기에 접목해서 사용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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