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
어젯밤엔 눈이 내렸다. 오랜만에 눈을 보니 정말 반가웠다. 어쩌면 누군가는 눈을 보며 별다른 감흥이 없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다음 날 출근 걱정에 잠 못 이룰 수도 있는데, 나는 이렇게나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새삼 참 세상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 주에는 새해가 밝았다. 작년 한 해는 무척 힘들었기에 새로 맞이하는 한 해가 더없이 반가웠지만, 막상 새해가 밝고 나니 마음처럼 새롭고 산뜻한 기분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사실 1주일 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에 불과한데도 ‘새해’라는 단어하나에 금세 이유를 붙여 ‘벌써 새해인데, 새해인데 아직도’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와 같은 일상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마들렌도 문제였다. 새해를 맞아 뭔가 멋진 마들렌을 만들고 싶은 욕심에 평소보다 무리해서 움직이다 보니 모든 일이 마음처럼 흘러가지는 않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은 어머니께서 허리가 아주 아프신지 아침부터 평소보다 훨씬 짜증스럽게 말을 건네셔서 나도 모르게 같이 짜증을 내고 말았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짜증스럽게 말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모르셨을 것이다. 아픔이란 게 그렇다. 나도 모르게 감정적인 반응을 하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내비치게 되는 것. 그 마음을 절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나 역시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그 투정 아닌 투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많았다.
아침부터 괜히 서운한 말을 주고받았더니 오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치 ‘새해’라는 저주에 갇힌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도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참 이게 무슨 짓일까. 깊은 의미를 담은 멋진 마들렌을 만들고 기록한다는 건 새해를 맞아 분명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그로 인해 현실에서 한껏 예민해져 스스로 불행을 만들어 낸다면, 그게 꼭 의미 있는 일인 걸까. 결국 화려한 새해맞이 마들렌은 포기하기로 했다. 굳이 스스로 불행을 만들지는 않기로 했다.
마들렌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점심을 먹기 전 방 앞에서 마주친 어머니를 괜스레 안아드렸다. 날도 추운데, 따뜻한 유자차나 한잔하자고 애매한 미소로 은근히 꼬드겼다. 어머니도 못 이기는 척 눈을 한 번 흘기시곤 웃으셨다. 몇 주 전에 담가 둔 유자청을 꺼냈다. 노오랗게 익은 유자청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향긋한 향기가 퍼져 나왔다. 어머니와 함께 따뜻한 유자차를 한 잔 나눠 마시니 몸도 마음도 따뜻해졌다. 안 그래도 유자청이 잘 익고 나면 마들렌을 만들려고 했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유자청으로 마들렌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멋지고 비장한 의미를 담은 새해 기념 마들렌이 아니라, 평소처럼 주변에 있는 재료로 소박하지만, 행복을 담은 마들렌을 만들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유자 마들렌을 만들었다.
마들렌 반죽에는 유자청의 시럽 부분과 껍질 부분을 함께 넣어주면 되는데, 유자청의 시럽은 조금 묽은 편이므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서 수분을 10~20% 날려준 뒤 사용했고 껍질은 잘게 다져서 사용했다. 마들렌 표면에는 유자청을 넣어 만든 유자 글라쎄를 발라 주었는데, 유자청은 설탕을 잔뜩 넣어서 새콤한 맛이 한풀 꺾인 감이 있기 때문에 레몬즙을 조금 섞어서 좀 더 상큼한 느낌의 유자 마들렌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올해 첫 마들렌이 완성되었다.
한껏 부푼 오동통한 마들렌을 한입 가득 베어 무니 바작하고 새콤달콤한 유자 글라쎄가 부서졌다. 그 아래로 아직은 따뜻한 감이 살아있는 촉촉하고 부드러운 유자 마들렌의 속살이 풍성한 유자의 향을 아낌없이 뿜어냈다. 유자차와 비교하면 조금 은은하지만 여전히 선명한 유자 향에, 살짝 섞은 레몬즙이 특유의 새콤한 맛을 더해주니 한층 더 향긋한 유자의 풍미를 기분 좋게 음미할 수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새해 기념 마들렌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북적거렸는데, 막상 유자 마들렌을 먹고 있으니 좀 더 여유를 가졌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마들렌을 만들 수 있었다면 더없이 기뻤겠지만, 그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새해’ 때문에 되레 기분이 나빠진다면 굳이 새해를 기념해서 마들렌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터무니없이 향긋하기만 한 유자 향이 왠지 올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