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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오미자 정과 마들렌

다시 한번 맞이하는 새해

by 거울새

시장에 냉이가 드문드문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날이 제법 따뜻해졌고, 날카롭게 살을 에던 차가운 겨울바람도 어느새 뭉툭한 웃음을 지으며 제법 푸근하게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이제 슬슬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고, 주머니 밖에서 곱은 손이 너무 아파 외출을 꺼리게 할 만큼 매서운 추위가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번째 새해가 찾아왔다.


우리나라에는 두 번의 새해가 있다. ‘신정’은 양력 1월 1일을, ‘구정’은 음력 1월 1일을 지칭하며, 구정은 민족 대명절인 설날을 의미하기도 한다. 덕분에 우리는 사실상 두 번의 새해를 지낸다. 올해처럼 설날이 무척이나 빠른 해에는 새해 인사를 건넨 지 몇 주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연거푸 새해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다시 또 인사를 건네자니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더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론 설날의 존재가 너무나 고맙다.


사실 설날은 다소 아쉬웠던 새해맞이 마들렌을 다시 만들어 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물쭈물하는 사이좋은 기회가 대부분 날아가 버렸다. 안 그래도 최근 물가가 많이 올라서 본격적인 설 연휴에 접어들어 재료 가격이 오르기 전에 재료 준비를 모두 마쳐야 했는데, 새해를 맞아 부지런히 아프고 아픈 기간에 못 했던 일들을 정신없이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와 버렸기 때문이다. 설날을 한 주 앞두고 마트에 갔다가 가격표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남아있는 재료들을 둘러보며 그나마 만들만한 마들렌이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하다가 과일 코너 한쪽 구석에 할인 중인 과일들 사이에서 비교적 상태가 좋아 보이는 배를 한 봉지 발견하고 빠르게 집으로 데려왔다. 어쩌면 한발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미처 팔리지 못하고 할인 코너까지 밀려났던 배와 함께 조금은 특별한 설날맞이 마들렌을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배 오미자 정과 마들렌을 만들었다.


얼마 전 오미자 청을 선물로 받았다. 오미자는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생과는 맛이 너무 강해 그대로 먹을 수 없지만 설탕과 함께 청을 담그면 특유의 신맛이 제법 누그러져 나름 매력적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안 그래도 배 오미자 정과를 한 번쯤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설 연휴를 맞아 오미자 청을 선물 받고 적당한 가격의 배도 발견한 걸 보면 이건 일종의 계시인 것 같았다. 특히 정과는 우리나라 전통 과자이니 설날을 맞아 전통적인 느낌을 살린 마들렌을 만들기에 제격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얇게 저민 배에 새빨간 오미자 청을 부어 오미자의 진한 붉은빛이 배에 충분히 스며들 수 있도록 약한 불에서 천천히 조려냈다. 너무 오래 조려내면 과육이 뭉개지며 부서질 수 있으므로 배 과육이 적당히 투명해져 뒤가 살짝 비칠 정도까지만 조려낸 뒤 실온에서 천천히 식혀줬다. 오븐이나 건조기에 넣고 낮은 온도에서 말려주면 정과가 완성된다. 만약 나처럼 정과로 꽃을 만들 생각이라면 아직 꾸덕함이 남아 있을 때 꽃을 만들고 다시 조금 더 말려주면 된다.


마들렌 반죽에는 배 오미자 시럽을 넣었다. 배를 조려내고 몽글몽글하게 뭉친 시럽에 따뜻한 물을 섞어서 반죽에 넣어주면 균일한 상태의 반죽을 만들 수 있다. 배 오미자 정과는 다양한 형태로 이용할 수 있는데, 완성된 정과를 다져 반죽에 섞어도 좋고, 표면만 살짝 마른 정과를 아주 곱게 다져 섞어도 좋다. 완성된 정과를 잔뜩 다져 올리면 정과의 무게가 부담스러워 평소보다 배꼽이 풍성하게 부풀진 않지만, 아주 쨍하고 선명한 오미자의 풍미에 쫀득한 배 오미자 정과의 식감을 기분 좋게 느낄 수 있고 꽃비가 내린 봄 동산처럼 아름다운 외형도 즐길 수 있다. 반면, 표면만 살짝 마른 정과를 아주 곱게 다져 넣으면 풍부한 오미자의 풍미에 비해 다소 순한 신맛과 부드러운 마들렌의 식감을 느낄 수 있어서 부담 없이 배 오미자 정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만족스럽다.



오미자와 만나 꽃으로 피어난 배처럼, 나도 다시 한번 아름답게 피어나는 한 해를 보낼 수 있을까. 설날을 핑계로 마치 처음 새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해야겠다. 다소곳이 접시 위에 놓인 배 오미자 정과 꽃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꽃처럼 피어나는 한 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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