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정과 마들렌

꽃처럼 피어나는 봄

by 거울새

요즘 날씨가 부쩍 따뜻해져서 이제 봄이 왔나 했더니, 갑작스레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다.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했다. 그런데, 집 근처 하천 변에 산책하러 나가니 추운 날씨를 견뎌낸 튤립 구근이 어느새 파릇파릇한 싹을 한 뼘이나 밀어 올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팝콘처럼 새하얀 매화가 여기저기 봄을 흩뿌려 놓은 듯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또다시 추워진 날씨에 아직 봄이 오려면 한참 멀었구나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는데, 이미 모두가 부지런히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트에도 봄이 찾아왔다. 봄을 상징하는 각종 나물과 과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요새는 봄을 알리는 여러 과일보다 겨우내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딸기가 부쩍 저렴한 가격으로 각 마트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각 마트가 경쟁하듯 앞다퉈 저렴하고 질 좋은 딸기를 판매하는 바람에 벌써 2주 사이 4박스가 넘는 딸기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사실 집 냉장고엔 더 이상 자리가 없었지만, 이번 겨울 동안 호기심에 한 번 만들어 본 딸기 정과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여러 마트의 유혹을 도무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딸기는 과육이 워낙 무르기 때문에 시럽에 조려내기보단 청을 만들 듯 설탕에 절여내서 정과를 만드는데, 건조기에 건조하지 않고 실온에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말린 딸기 정과의 맛이 놀라울 만큼 좋았다. 사실 맛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날 줄은 몰랐는데, 건조기로 말리면 약 40도 내외의 낮은 온도라도 오랜 시간 열을 가하다 보니 특유의 캐러멜 풍미가 남게 되지만, 1주일 이상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연 건조한 딸기 정과는 맛과 향기에 큰 변화 없이 오랜 시간 수분을 천천히 날려서 그 맛과 향이 점점 농축되며 진해지고 훨씬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었다. 덕분에 너무나 상큼하고 화사한 향이 느껴져서 도저히 장기 보관을 위해 만든 딸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딸기 정과를 만드는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딸기를 눕혀 말리기 위해 큰 채반과 흘러내리는 즙을 받쳐줄 받침대가 필요했고, 채반을 겹쳐두면 건조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채반을 늘어놓을 넓고 평평한 공간이 필요했다. 요즘처럼 기온이 다소 낮은 날에는 큰 걱정이 없었지만, 봄기운이 완연해져 한낮의 기온이 조금만 올라도 날파리가 기승을 부렸고, 표면이 충분히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당도가 부족하면 골마지가 끼는 경우도 있어서 하루에 한두 번은 꼭 딸기와 마주하며 1주일 이상 설탕을 반복해서 뿌리고 골고루 마를 수 있도록 앞뒤로 뒤집어 가며 끊임없이 신경을 쓰고 관리해 줘야 했다.


하지만 분명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특히 딸기 정과를 만드는 동안에는 매일매일 새삼 풍부한 딸기 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사시사철 포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딸기 정과는 모두 베란다에서 말렸는데, 딸기 정과를 만드는 동안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엄청나게 진한 딸기 향기가 진동해서 가끔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저 향긋한 게 아니라 아주 화사하고 달콤한 향기부터 아주 잘 익은 포도처럼 향긋하고 싱그러운 향까지 하루하루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는 딸기 향 덕분에 딸기 정과를 만드는 고충을 새카맣게 잊을 수 있었다.


두 번째 딸기 정과를 완성했을 때쯤, 역시 딸기 정과로 마들렌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딸기 정과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딸기 정과 마들렌은 최대한 딸기만을 이용해서 순수한 딸기의 풍미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딸기에서 흘러나온 딸기 과즙과 정과를 만들며 채반 아래로 떨어졌던 딸기 과즙이 살짝 섞인 설탕을 긁어모아 함께 사용했다. 딸기 정과는 절구로 짓이겨 반죽에 섞어주었고, 반죽 위엔 딸기 정과를 얇고 길게 잘라 모양을 내주었다.



완성된 딸기 정과는 생각보다 은은한 딸기 풍미를 지니고 있었다. 워낙 딸기의 풍미가 생생한 딸기 정과를 이용해서 솔직히 좀 더 쨍한 딸기 맛을 상상했는데, 딸기가 아주 선명하게 다가오는 느낌은 아니었다. 하지만 되레 은은하게 풍겨오는 딸기의 맛과 향기가 봄의 분위기에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찌뿌둥한 몸이 화들짝 놀랄 만큼 강렬한 맛이 아니라, 겨우내 진한 맛에 지친 혀 위에 아주 은은한 화사함이 서서히 꽃처럼 피어나며 지친 혀를 다정스레 달래주는 듯한 봄의 맛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이제 곧 정말 봄이 꽃처럼 피어나겠구나 싶었다. 마들렌 한입에 완연한 봄이 점점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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