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봄날
요즘엔 한낮 동안 꾸벅꾸벅 졸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면의 질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낮에는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고, 저녁이나 밤쯤 돼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레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고, 새벽엔 몸이 불편해서 잠을 편히 자지 못하니 악순환이 점점 가열되는 양상이었다.
사실 몸 상태가 안 좋을 땐 나로서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점점 좋아진다면 만사 제쳐두고 그저 잠만 잘 텐데, 회복되는 속도가 워낙 더딘 데다 가만히 누워 시시각각 온몸 여기저기로 찾아오는 통증을 오롯이 느끼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정신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기 때문에 이래저래 마음이 답답할 뿐이었다.
그 때문일까, 지난 한 달은 나도 모르게 제철 식재료를 사 모으고 여러 방법으로 저장하는 일에 날마다 몰두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몸이 좀 더 나아지면, 각종 마들렌에 사용해 볼 참이었다. 겨울엔 과일이 상대적으로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론 유자를 시작으로 귤과 금귤,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등 각종 시트러스 류 과일이 상큼하게 마트를 가득 채웠고, 다양한 종류의 딸기가 탐스러운 붉은빛을 뽐내며 연신 시선을 끌었다. 또한 봄이 다가오면서 여러 과일들이 끝물을 향해 달려가는 가운데 쌉쌀한 맛을 자랑하는 봄나물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니 나로서는 내 신경의 일부라도 끌어주는 그들의 존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중 가장 긴 시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건 역시 딸기다. 딸기는 적당한 두께로 잘라서 설탕을 묻혀 말리는 정과의 형태로 저장하고 있는데, 올해는 예년처럼 잼이나 주스용으로 판매되는 아주 자잘한 딸기가 아니라 제법 크기가 크고 여러 가지 인증 마크도 보유한 좋은 품질의 딸기가 괜찮은 가격에 판매되다 보니 도저히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얼마 전 딸기 정과로 마들렌을 만든 이후로도 ‘올해 딸기 정과는 이걸로 끝이다!’라고 할 즘 또 다른 딸기 정과 만들기에 돌입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딸기 정과는 요 몇 년간 만들었던 수많은 저장 식품 중 단연 손에 꼽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품을 들여 세심하게 실온에서 말려내면 딸기 특유의 싱그러운 향이 오롯이 남아 저장 과일치곤 독보적인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잼을 만들어도 품종에 따라 맛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열을 가하게 되면 특유의 향이 다소 옅어지고 당이 가열되며 생기는 달고나 같은 달달한 맛이 강해지기 마련인데, 정과는 열을 전혀 가하지 않다 보니 본연의 맛과 향이 그대로 남았고 덕분에 품종 간 맛의 차이도 정말 확연한 편이었다.
얼마 전에는 곶감 단지를 만들다가 혹시나 전통적인 맛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질까 싶어서 딸기 정과를 이용한 딸기 단지도 함께 만들었었는데, 그 속 재료가 또 생각보다 너무 매력적이어서 곧바로 마들렌을 만들어 보았다. 그렇게 오늘 만든 마들렌은 바로 딸기 단지 마들렌이다.
딸기 단지에는 올해 만든 딸기 정과와 작년에 만들어 둔 딸기 절임 그리고 반건조 딸기 등 다양한 딸기를 사용했다. 부드러운 맛을 위해 크림치즈에 각종 딸기를 잘게 다져 넣었고, 딸기 정과를 말리며 배어 나온 딸기즙으로 맛을 냈다. 좀 더 상큼한 맛을 위해 반죽엔 유자 껍질을 조금 다녀 넣고 크림치즈엔 유자청을 살짝 더해줬는데,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딸기 단지는 예상한 대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맛이었는데, 다양한 딸기의 식감과 풍미가 쉴 새 없이 이어져서 각각의 특징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었다. 역시나 가장 돋보이는 건 딸기 정과의 존재감이었다. 생딸기가 없음에도 특유의 풍미가 그대로 살아있어 좀 더 화사하고 풍성한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꽃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다소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생딸기를 제때 사용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작년의 늦봄은 어느새 흘러가고 이렇게 딸기 정과에 정신없이 몰두하는 새봄이 찾아온 걸 보면 뭐 그리 아쉬워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연신 표정을 찌푸린 채 몸을 한껏 쭈그리고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이 시간도 결국 흘러갈 것이다. 그러니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시 돌아올 또 다른 봄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