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거울새 Mar 03. 2023

깻잎 딸기 마들렌

2023년 1월 넷째 주의 마들렌

이가 깨졌다.


그것도 무려 깻잎을 먹다가 이가 깨졌다.


깻잎은 요즘 우리 집에서 꽤 핫한 식재료다. 평소 절대적인 식사량이 부족하다 보니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많이 하는 편인데, 깻잎은 육류의 종류에 상관없이 곁들여 먹기도 좋고 영양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내게 잘 맞는 식재료이기도 해서 최근 부쩍 깻잎을 먹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일반적으로 깻잎을 먹다가 이가 깨지는 일은 흔하지 않겠지만, 그날따라 웬일인지 깻잎을 젓가락으로 한 장씩 집어 먹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깻잎을 집고 있던 젓가락을 씹어버렸다.


분명 몇 개월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어머니와 함께 왜 자꾸 젓가락을 씹냐며 어이가 없어서 웃었는데, 이번에는 혓바닥에 스치는 아래쪽 앞니의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살짝 맺히면서 뭔가 문제가 생겼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아래쪽 앞니의 모서리 부분이 깨져있었다.


왠지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렇다. 나는 사실 꽤 오랫동안 치과를 방문하지 않았다.


아마 정식으로(치료를 위해) 치과를 방문한 건 8살쯤 아래쪽 앞니(반대쪽)가 부러져서 치료받은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가뜩이나 요 몇 년간은 입 안에 수백 개의 염증이 돋아난다거나 심한 고열로 거동이 쉽지 않을 때 치아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 번쯤 치과에 가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었는데, 또다시 아래쪽 앞니에 문제가 생겨서 치과에 방문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깻잎을 먹다가 이가 깨질 줄이야…….


다행히 다음 날 집 근처 치과가 문을 열어서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치과를 방문했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과는 달리 치료가 필요한 충치가 몇 개 있었고 사랑니는 4개 모두 발치를 권유받았다.


정작 깨진 앞니는 부위가 크지 않고 위쪽 모서리라 치료받아도 유지가 힘들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크게 불편함이 없으면 그대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깨진 앞니처럼 조금은 비뚤어진 마음으로 귀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 부쩍 구강 건강에 관심이 커져서 나름 열심히 관리한 덕분에 구강 건강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꺼번에 닥쳐온 치과 진료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속 깻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괜스레 눈을 흘기다가 이내 맥이 풀려서 구강 건강에도 좋은 죄 없는 깻잎을 미워하지 말고 더 열심히 먹어서 건강해지자고 생각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마들렌은 깻잎 딸기 마들렌이다.



갑자기 깻잎에 웬 딸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깻잎과 딸기는 생각보다 괜찮은 조화를 이루는 재료다. 둘 다 정향 느낌의 향신료 향이나 시트러스 류의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같은 꿀풀과 식물인 바질과 민트를 딸기와 함께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서양권에서는 깻잎을 바질과 민트의 중간 맛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니 그렇게 어색한 사이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마들렌 반죽에 깻잎 가루를 넣어서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깻잎의 향을 살리고, 그 사이에 딸기 생과와 딸기 생과를 졸여 넣은 크림치즈를 함께 쌓아 올려서 마들렌을 완성하기로 했다.


원래 크림치즈 필링은 딸기 생과를 고정하는 용도로 소량만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집에 딸기 생과가 많아서 좀 더 진한 딸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크림치즈에도 딸기를 졸여 넣어서 맛을 살렸다.



꽃 역시 딸기 생과를 원형으로 잘라서 만들었는데, 얇게 저민 과육이 생각보다 쉽게 물러져서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마들렌은 각 층의 표면에 딸기 크림치즈를 바르고 가운데 딸기 생과를 잘라 넣어 샌드위치 형식으로 쌓아 올렸는데, 보기보다 작업이 쉽지 않아서 결국 준비해 둔 마들렌 중 딱 1개만 완성품으로 만들었다. 유일한 완성품이 나름 괜찮은 느낌으로 완성돼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갓 구운 깻잎 마들렌은 마치 호지차를 넣은 듯 구수한 풍미가 먼저 코끝을 자극하고 뒤이어 향긋한 향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는데, 딸기 크림치즈를 더하니 쑥과 같은 느낌의 향긋함이 먼저 퍼져나가고 뒤이어 크림치즈의 묵직한 풍미와 딸기 자체의 상큼함이 어우러져서 깻잎을 썼다고는 생각하기 힘든 친숙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깻잎과 딸기 모두 매력적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다양한 형태로 마들렌에 이용해 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흑토끼 당근 마들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