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생청 마들렌

봄이 시작되었다.

by 거울새

며칠 전 입춘이 지났다.


입춘은 한해를 이루는 24 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이며,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날이다. 물론, 입춘이 되었다고 금세 날이 따뜻해지는 건 아니다. 다만, 대지에 봄의 기운이 뿌리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엔 이미 온기가 감도는 듯했다. 언제나 그렇듯, 계절은 부지런히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헛헛한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싸늘한 날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진득한 맛을 자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드디어 봄이 숨 트기 시작한 만큼 왠지 조금은 상큼한 풍미를 느끼고 싶어졌다. 그래서 오늘 준비한 마들렌, 바로 홍생청 마들렌이다.


시작은 청귤(이하 풋귤)이었다. 재작년 여름인가, 풋귤로 청을 담갔다. 처음에는 나름 상큼한 맛에 은근 씁쓸함이 느껴지는 그 향취가 독특해서 꽤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보다 자주 찾게 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상큼하기로는 매실을 따라올 자가 없었고, 향긋함으로는 유자차만 한 것이 없었기에, 여름에도 겨울에도 풋귤 청이 비집고 들어갈 만한 기회가 별로 없었다. 게다가 풋귤을 뒤늦게 구매해서 청의 단맛이 조금 강한 편이었다. 레몬즙을 섞어 먹어야 마음에 딱 드는 맛이 났는데, 매번 레몬즙을 더해 먹는 것도 귀찮다 보니 점점 찾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냉동실에 넣어둔 채 겨우 먹어내고 있었는데, 얼마 전 냉동실 청소 중 구석에 있던 새로운 팩 하나를 발견하는 바람에 요즘 기회가 될 때마다 한 잔씩 마시던 차였다.


봄이 왔다고 갑작스레 너무 상큼한 마들렌을 만들기보다, 역시 적당히 새콤달콤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있는 정도가 딱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약간의 무게감을 위해 홍차까지 더해준다면 더없이 매력적인 마들렌이 될 것 같았다. 특유의 쌉쌀한 향을 좀 더 살리기 위해 얇게 저며 말려둔 풋귤도 꺼내어 곱게 갈아내고, 청에는 레몬즙을 살짝 섞은 뒤 수분을 날려 두었다. 풋귤 청을 희석해 만든 글라세를 표면에 발라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이번 주는 조금 가벼운 마들렌을 만들고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


잠들기 전 문득 식감이 너무 밋밋한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견과류를 좀 올려줄까? 푸릇한 색감을 살린 피스타치오는 어떨까. 물론, 바삭함을 더해주는 건 좋은 생각이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다시 너무 묵직해지는 건 아닐까. 애써 상큼한 맛을 살린 마들렌을 계획했으니, 기왕 무언가를 더할 거라면 그 정체성을 좀 더 살린 재료가 좋을 것 같았다.


생강?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재료는 바로 생강이었다. 그것도 생강 절임.


작년 늦가을쯤 햇생강으로 만들어 둔 생강 절임의 맛이 제법 좋아서 요즘엔 회를 먹을 일이 있으면 베니쇼가 대신 우리 집표 생강 절임을 먹고 있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회를 먹고 남은 베니쇼가가 있었는데, 그걸 가볍게 튀겨 올리면 새콤달콤하면서도 맵싹함이 더해져서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봄을 기리며 만드는 만큼 분홍색의 색감도 절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마들렌을 굽기 직전 베니쇼가 튀김을 고명으로 준비하게 되었다.


베니쇼가는 아주 얇게 채 썰어 준비했다. 물기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으면 기름이 튀며 대참사를 맞이할 수 있으므로, 물기 역시 완전히 깔끔하게 닦아냈다. 겉에 가볍게 전분을 묻히면 좀 더 바삭하게 튀겨낼 수 있지만, 생강 채끼리 들러붙거나 색이 금세 변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나는 이번에 반만 전분을 입혀 튀겨 보았는데,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되겠다.



풋귤 가루를 섞어준 덕인지 마침 마들렌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하늘하늘한 분홍색 생강 채가 마치 봄날의 진달래처럼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시판 베니쇼가는 새콤한 맛이 다소 강해서 첫 입에 치고 들어오는 그 알싸하면서 선명한 산미에 흠칫 놀랐지만, 생강 채를 워낙 좋아하는지라 개인적으로는 불쑥 문을 열고 등장하는 생강의 존재감이 되레 재미있게 느껴졌다.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주는 홍차의 향과 마지막쯤 은근히 얼굴을 내미는 풋귤의 은은한 풍미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 어째, 뒤늦게 합류한 생강이 오히려 주인공처럼 날뛰는 듯했지만, 전체적인 균형감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 만족스러운 첫 봄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입안으로 이른 연풍이 찾아온 만큼, 올해는 좀 더 빨리 겨울의 끝에 닿을 수 있을까. 눈치 없이 다시금 추워지는 날씨에 잔뜩 움츠러드는 요즘이지만, 오늘 가슴 한 편엔 작은 봄이 이미 싹을 틔웠다. 벌써 따뜻한 그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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