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쾅!
본격적인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주말, 나는 화장실에서 하늘을 날았다.
너무 아프면 순간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다더니, 헉! 하고 숨이 막혔다.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한 꼬리뼈에 무지막지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오만 생각이 다 지나갔다. 설마 꼬리뼈가 뭉개진 건가. 손을 짚어 만져보니 왠지 평소보다 사뭇 납작해진 기분이 들었다. 남의 살을 만지는 듯 생경한 감각에 섬뜩해졌다.
어느새 큰 소리를 듣고 뛰어오신 어머니가 연신 나를 질책하며 울상을 짓고 계셨다.
‘아, 또 맨발로 들어갔구나.’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낮은 신음소리가 나도 모르게 연신 터져 나왔다. 누워야 한다. 일단 누워야 해.
겨우 방으로 자리를 옮겨 엉거주춤 엎드려 누웠다. 불과 몇 분 새에 몸을 어찌 가눠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세가 불편해서 돌아누우려는데, 어깨 쪽에 붙은 갈비뼈 사이로 날카로운 통증이 가로질렀다.
아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머리맡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려던 퀴즈 화면이 홀연히 빛을 내고 있었다.
이미 계획보다 하루가 미뤄진 이번 포스팅을 어떻게든 설 당일 전에 올리기 위해 열심히 퀴즈를 만들던 차였다. 어머니께서 저녁을 준비하시다 급하게 뭔가를 부탁하셔서, 손 좀 씻고 오겠다고 화장실로 가선 꽈당! 바닥에 물이 있는지 모르고 급하게 맨발로 내려선 게 화근이었다. 언젠가 넘어질 줄 알았다고 총알 같은 잔소리를 쏘아대시는 어머니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퀴즈를 급하게 마무리해서 올리고 다시 엉거주춤하게 누웠다.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꼬리뼈만 무사하다면 기적적인 해프닝으로 넘어갈 일이었다. 욱신대는 꼬리뼈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저릿하고 우리했지만, 큰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한두 시간쯤 지나자 숨어 있던 통증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크게 다쳤으면 손쓰기 애매할 만한 부위였다. 큰 문제가 없는 건 다행이었지만, 포스팅을 미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마들렌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가 어머니께 정신 나갔느냐고 한바탕 또 욕을 먹었다. 오늘은 일단 자자. 그렇게 일찍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나니 온몸이 뻐근했다. 아직도 묘하게 우리한 꼬리뼈와 밤새 좀 더 선명해진 통증이 날 반겼다. 하지만 새롭게 발견된 문제는 없었다. 그래도 마들렌은 올릴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했다가 진짜 미쳤는가 싶어서 혼자 웃었다. 마들렌이 문제가 아니라 몸에 크게 이상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다사다난하게 덜컥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조금씩 나아가는 요즘 내 일상과 겹쳐 보여 입에 쓴맛이 감돌았다. 어쨌든 마들렌 포스팅을 마무리하자.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 오늘 내가 원하는 일은 그뿐이었다.
사실 작년 연말부터 당근 맛을 지우지 않고, 그 맛을 오롯이 담은 케이크를 주제로 마들렌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마침, 올해가 붉은말의 해이고 당근은 말이 좋아하는 채소이니 ‘붉은 당근’이라면 설날을 기념하기에 더없이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요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며칠 전 드디어 끝까지 챙겨 본 흑백요리사에서 이하성 셰프님이 만드신 당근 케이크를 보며 실마리를 얻었다. 당근 정과. 저걸로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완성된 마들렌의 모습은 생각과 사뭇 달랐다. 원래는 얇게 저민 당근을 꽃 모양으로 찍어서 정과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즙을 내고 남은 당근 과육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과육은 바짝 말려 반죽에 소량 더하고 나머지는 설탕과 레몬즙, 제스트와 함께 조려 바삭한 정과로 완성했다. 당근즙은 수분을 날리고 진득하게 졸여 일부는 반죽에, 나머지는 글라세에 활용했다. 프로마주 블랑에 레몬 제스트를 섞어 상큼한 필링을 준비하고, 당근 즙에 담가 신맛을 중화한 베니 쇼가를 튀겨 정과와 함께 반죽 위에 올렸다.
그렇게 붉은 당근 마들렌이 완성됐다.
바삭한 글라세의 달콤하면서도 산미 넘치는 맛과 부드러운 마들렌의 식감, 레몬의 상큼한 향을 자연스레 감싸 안으며 은은하게 퍼지는 감칠맛 가득한 당근의 풍미가 기꺼웠다. 바작바작 연신 존재감을 드러내는 당근 정과가 쉴 새 없이 입안을 뛰어다녔고, 언뜻언뜻 생강이 모습을 비쳤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모든 요소가 다 좋았다. 포스팅을 미뤘다면 아쉬웠을 터였다. 언제나처럼 다사다난했던 하루, 이제 올해도 본격적으로 시작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