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서울은 너무 산만한 도시야.
도시가 산만하다.
서울에 불시착한 외계인은 생각했다.
천만, 아니 조금 줄어서 970만 지구인은 오늘도 서울을 헤집는다.
외계인은 그런 개미떼의 광경을 가만히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지구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계인은 오늘도 인파에 몸을 맡긴다. 몸에 힘을 축 빼고 중력에 따라 그냥 자유롭게 몸을 흔든다.
-어쩌면 중력에 거스르지 않는 지금이 가장 자유로울지도 모르겠어.
외계인은 생각했다. 지하철에서 걸어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푹 처박고 묵묵히 일렬로 걸어간다. 사실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도 바닥만을 바라본다.
-공장 같아. 저들은 사실 출근을 명령받은 안드로이드인거야. 휴식도 밥도 필요 없는 안드로이드. 손에 든 건 배터리고 말이야.
지구인들은 자기네 행성의 하늘이 파랗다는 사실을 모를지도 모르겠다. 필사적으로 매일같이 지구인을 지망하고 있지만, 솔직히 외계인은 지구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장난감같은 철도가 다리 위를 지나가면 한강이 보인다. 이 때 외계인을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다.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본다면 외계인이다. 지구인의 관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외계인이 보기에 한강은 아주 아름다웠다. 아침의 동쪽에서 지는 노을. 물결에 빨간 빛이 반사되는 건 절경이다. 물결의 가장자리를 타고 도는 빛은 태양이 투명한 물로 물장난을 치는 것이다. 지하철이 다시 땅 속으로 파고든다. 짧았던 아름다움을 조용히 애도한 후, 외계인은 다시 지구인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바닥만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나는 지구인이 되기는 먼 것 같아, 엄마.
외계인은 생각했다. 아직은 저 아름다운 강을 넋을 놓고 마음껏 쳐다보고 싶었다.
외계인의 집은 경복궁에서 20분 거리에 있다. 경복궁은 외계인에게는 그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오백년 전 건축물일 뿐이다. 그다지 인상적이지가 못하다. 다시 말하지만 일상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계인도 처음에는 눈을 떼지 못했다. 오백년 전에도 여기 이곳에 있었을 건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외계인은 이제 지구인 흉내를 잘 낸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멍하니 눈에 초점을 흐리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지구인 흉내를 낼 수 없을 것 같다. 창밖의 사람들은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둘 셋씩 손을 붙잡고 즐겁게 고궁을 걷고 있었다. 외계인은 이런 건 처음 본다. 그건 아마 일요일에 이 곳을 지나간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토요일 혹은 일요일 오후 두 세시 즈음, 안국역 주변에는 애정이 넘쳐난다.
-다들 웃고 있네. 신나 보여.
외계인은 혼란스러웠다.
-어느 쪽이 지구인이지? 어디를 흉내내야 하지?
창 밖 사람들은 서로를 그 무엇보다 예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외계인은 지구인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본다. 다시 앞을 본다. 거긴 모노톤의 사람들이 파란 버스에 덜컹덜컹덜컹 실려가고만 있었다. 다시 창문을 본다. 사람들이 웃으며 경복궁 안으로 들어갔다. 계절은 아직 봄이 샘을 부릴 초봄이었다.. 그러나 외계인의 눈에는 그냥 파란 봄처럼 보였다. 가볍게 팔락거리는 치맛자락이 진달래꽃을 닮았다. 외계인은 바보처럼 덜컹덜컹덜컹 파란 버스에 실려가며 창밖만을 바라봤다. 버스가 거기를 아주 지나버릴때까지.
-나는 지구인이 되기는 먼 것 같아, 엄마.
외계인은 다시 생각했다. 뭘 흉내내야 지구인이 되는 건지, 외계인은 혼란스럽다.
이 작은 6평짜리 원룸은 외계인의 집이다. 이사를 오기 위해 외계인은 작년 겨울, 엄마의 손을 잡고 방을 구하러 다녔었다. 이 방은 세 번째로 본 방이다. 첫 번째 방은 습하고 작은 방이었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한 층에 한 집만 있어서 벽간소음 걱정은 없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화장실은 딱 세걸음 반경으로만 움직일 수 있었다.
-여기서 농구를 하면 파울당할 걱정은 없겠군.
외계인은 실없이 생각했다. 거기서 나와서 뒤를 돌아보니 모든 게 땅에 달라붙은 것 같은 방이 시야에 들어왔다. 분명 조명이 어둡진 않았던 것 같은데 천장의 불빛이 껌벅거리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분명 양말을 신었는데, 노란 장판이 맨발에 쩌억쩌억 눌러붙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공기가, 뭐랄까, 그래, 스산했다. 공인중개사 아저씨는 바쁘단 티를 무척 내면서 한 층에 한 집만 있어서 벽간소음 걱정은 없을 거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번에는 이정도면 나쁘지 않지 않냐는 이야기를 덧붙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 집을 나왔다.
거길 나와서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했다.
-지구인들은 참 힘들게들 사는구나. 나도 이제 이런 지구인이 되는구나.
그러면서도 문득 들어오는 길에 있던 우뚝 선 오피스텔이 생각났다. 그 오피스텔의 그림자는 외계인이 있던 건물을 완전히 머금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구인이 아닌 누가 사는 건지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 날, 만만한 외계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었더니 광대가 아팠다. 두 번째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외계인은 피로했다. 세 번째 집은 나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와 보안 카메라가 있는 곳이었다.
-계약할게요.
외계인은 그렇게 말했다. 공인중개사 아저씨의 표정은 그제야 밝아졌다. 사실 그 때도 아저씨는 바쁘게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받고를 반복했다.
-지구인들은 돈이 중요하다고 했어. 아마도 저 아저씨도 나보단 돈 많은 부자들이 대상이겠지.
외계인은 만만하게 보이지 않게 짓고 있던 미소를 유지 할 수가 없었다. 광대가 너무 아팠다. 그 날은 그냥 광대가 많이 아팠던 날로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집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상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외계인은 그제서야 자신이 서울에 불시착한 외계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나가봤자 아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건 피로하다.
-나는 영원히 지구인이 되지 못하는걸까. 하기야, 저 아저씨같은 지구인이라면 영영 외계인으로 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일단 오늘의 외계인은 어색한 현관 비밀번호를 뜨문뜨문 치고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외계인 종종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책임진다는 감각은 외계인을 서울을 버티게 한다. 대형마트가 있는 아파트 마을까지는 세 정거장. 오늘도 외계인은 파란버스에 덜컹덜컹덜컹 실려가고 있었다. 가는 길은 죄 8차선 도로다. 외계인은 이런 큰 도로가 주택가에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구인의 마을은 모든 것이 산만하다.
-영영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데 지구인들은 이런 도로마저 무단으로 건너가고는 한다. 심지어 차는 그걸 보고도 80KM 최대 속력으로 쌩쌩 지나간다. 지구인들은 다들 어딘가에 쫓겨서 사는 것 같다. 걸음도 빠르다. 밥도 빨리 먹는다. 솔직히 나이도 빨리 먹는 것 같다.
-저렇게 뭐에 쫓겨 사는 것처럼 걸어다니면 나도 지구인이 될 수 있나.
외계인은 스스로가 지구인의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굉장한 담력을 필요로 하는구나.
버스에서 내리자 8차선 도로의 굉장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옆의 거대한 아파트 사이에 소리가 갇혀 귀를 피로하게 만들었다. 아빠는 이걸 두고 서울 소리라고 불렀다.
-서울 소리라니 뭐야, 아빠.
-이런 소리 있잖아. 삶이 산만해지는 것 같아.
-여긴 고요가 없는 곳이야.
-그래도 나는 가끔 이게 그리운 것 같아.
-아빠는 서울에 살아본 적도 없잖아.
외계인은 그럴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외계인은 고요함을 사랑하는 존재다. 외계인의 고향은 나무가 많아 소음이 이렇게까지 울려퍼질 일이 없다.
-지구인이 되려면 이런 것도 사랑해야 하는 걸까.
외계인은 도무지 이런 것까지 사랑할 자신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