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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Aug 05. 2016

나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 어머니...

영화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  마츠오카 조지, 니시타니 히로시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좋은 영화를 발견했을 때의 행복감. 가슴의 벅차오름.



안그래도 얼마전 영화관에 들러서

영화 한편을 꾸역꾸역 보고 와서,

애매하게 갖은 야채 넣고 적당히 끓여서는

아무런 맛도 안 나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그래서

마음 한켠 허무하게, 국물을 몇 숟가락 뜨다 말았을 때 느껴질 법한

그런 찝찝함에 휩싸여 있던 때에



우연히 발견한 좋은 영화. 아름다운 영화. 슬프지만 행복한 영화.

온갖 역설이 뒤섞여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런 우리의 삶 자체를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나는 이 '담담함'에 항상 감동한다.)




"이렇게 해야 해 ─"




너무나도 뻔한 교훈,

너무나도 드러난 감동,

그 작위성은 너무나도 일차원적이니까.

나에겐 늘 찝찝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 그냥 보면 안다.

내가 살아갈 방향이.

그리고 나를 돌아보고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

그냥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이 곧 나의 삶이고, 우리의 삶이기에

무언가 설명하고 강조하고 자극적으로 과장할 필요가 없다.

그냥 ─ 느낀다.




─ 그런 좋은 영화.

나는 이런 류의 영화가,

정.말.로. 좋다.









어쩌면 뻔한 스토리일지도 모른다.

(여기부터 스포일 있습니다. 하지만 줄거리를 모두 알고도 볼 만한 영화입니다.)



그냥 성품은 착한 아들이,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독립하여서는 제멋대로 살고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아들에게 헌신하고 아들만을 위하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께 죄송스러우면서도 타락함과 게으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러다가 어머니의 병환에 문득 정신을 차려

뒤늦은 효도를 하려 하지만

그 역시 기간이 그리 길진 못하고

예전보단 어머니께 많이 해드리지만

그것이 늘어진 고무줄 마냥 매너리즘에 빠져들 때쯤

어머니의 병환의 악화.

아들의 고통과 후회, 아쉬움, 죄송스러움, 가슴 아픔.

그 속에서도 어머니는 오히려 아들과 가족을 염려하며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이 얼마나 뻔한 스토리인가.




하지만 이게 왜 '뻔할 수 밖에 없는' 스토리일까?

바로 그게 우리 모두에게 거의 예외없이 적용되는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자극도, 어떠한 반전도, 어떠한 과장도 없고.

그냥 '그 자체' 그대로이니까.




자극적인 이야기와, 반전과, 스릴과, 통속적임에 희열을 느끼는,

그리하여 끊임없이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고,

어떨때는 오히려 그러한 통속적인 것을 미화시키는,

그런 요즘의 우리들과 요즘의 문화에 다소 비판적인 나는,

이런 담담한 이야기가 좋다.







그리고 이 영화의 좋은 점 중 하나.



다소 늘어질 수도 있는 스토리지만,

관객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편집과 전개.

과거와 현재의 빠른 속도감.

한 장면을 놓치면 다음 장면 물음표를 찍게 만드는 긴장감.



이 영화는 집중해야 한다.

다소 늘어지는 영화인데도, 우리에게 집중하게끔 한다.

'아들'의 1인칭 시점의 전개에, 우리의 감정을 몰입시킨다.










엄마의 손을 끌고 걷는 건, 이게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멋대로의 아버지에게서 떨어져나와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길 ─ 아들의 손을 잡고 이끄는 어머니의 모습과, 도쿄에 올라온 어머니의 병환이 짙어지자 마지막 인생을 향해 나아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들의 모습.




어릴 때는 어머니가 자식을 이끌고, 나이가 들면 자식이 어머니를 돌보는 것. 모두가 뻔하게 생각하는 삶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묘사해 낸 두 장면의 평행선.



나는 이런 사소하지만 느낌있는 장면이 좋다.











그리고 일본 영화 특유의 감각적인 문구들.



병세가 짙어지면서 어머니는 한번씩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멍한 눈으로 오로지 자식과 가족 생각 뿐인 어머니. 

항암치료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병실에 누워 아픈 밤들을 지새우면서도 어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하신다.


냉장고에 도미회하고, 가지 된장국 있다. 데워먹어라.



그 말을 들으며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독백한다.

그날 도쿄에는 벚꽃철에 함박눈이 내렸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모를 만우절 같은 날이었다.










아들의 대학졸업장을 들고, '이게 내 전재산이야'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어머니. 

아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행복한 미소를 가득 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도쿄에 온 첫 해 아들이 좋은곳에 많이 데려가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게 해줘서, 당신은 도쿄에 온 첫 해 그 1년 동안 평생받을 효도를 다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긴 세월 고마웠다. 도쿄생활을 아주 재미있었다.
엄마는 결혼에는 실패했지만 마음 착한 아들을 두어서
행복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었다.
엄마는 아무 여한이 없다. 잘 있거라. 마사야군.
엄마가.











엄마는 안녕이라 했지만 그런 말이 어딨어.
난 앞으로도 계속 엄마 아들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칩니다.
─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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