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아이덴티티》 vs. 영화《더 워드》
나는 일전에 정신과 전문 병원에서 수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의 '정신'에 관한 책이나 영화에 왠지모르게 관심이 간다.
참 많이 닮은 영화 두 편이 있다. 마치 평행이론 마냥, 10년의 터울을 두고 데칼코마니 처럼 닮은 영화. 어쩌면 이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닮아 있을 수도 있으나, 이 영화 두편은 여러가지로 참 많이 닮아 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아이덴티티(Identity)》(2003년작)와, 존 카펜터 감독의 《더 워드(The Ward)》(2010년작, 2013년 국내개봉작) .
반전영화로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영화 아이덴티티는 그 시절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영화였다. 반전 영화의 대명사인 영화《식스센스》보다도 나에게는 이 영화의 반전이 더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연기력을 좋아하는 배우 존 쿠삭과의 첫 만남이 되었던 영화, 그것이 바로 아이덴티티였다.
그리고 또 다른 영화 《더 워드》.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화 《더 워드》는 《아이덴티티》의 여성판이라고 하면 표현이 조금 웃길까. 하지만 정말 그렇다. 영화《아이덴티티》가 '에드(존 쿠삭)'를 중심으로 한 남녀 혼성 정신분열병을 다루고 있다면, 영화《더 워드》는 '크리스틴(엠버 허드)'을 중심으로 한 여성 인격들이 분열되어 벌어지는 스릴러니까.
솔직하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작품성이나 각본의 정교함 등의 여러가지 관점으로 보았을때에 좀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쪽은 ─ 당연히 예상가능하겠지만 ─《아이덴티티》쪽이다. 숨막히는 긴장감과 살인을 둘러싼 정교한 움직임. 그리고 중간중간 관객들의 심장을 죄게 하는 소름끼치는 스릴감. 분명히 점수를 주자면 《아이덴티티》의 완승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혀둔다.)
《더 워드》는 미모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조금은 조잡한 악령 영화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살짝의 반전 ─ 솔직히 반전을 예상하진 못했다. 하지만 2013년이라면, 이정도의 반전은 너무 뻔해져 버린 세대가 되어 버린 듯 하다 ─ 이 전부. 그에 반해, 《아이덴티티》는 단순한 귀신영화의 범위를 넘어선, 지능적인 살인사건들에 대한 추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얼핏 보기에도 그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단지 영화《더 워드》의 특이점이라면, 선과 악의 불분명이랄까. 완벽하게 착한 인격과 완벽하게 선호되는 인격, 전적으로 배척되는 인격이 없는 정신분열이라는 점은 조금 특이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인격 속에서 주치의가 선택한 인격은 사후 트라우마 발생 전의 원래의 '앨리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까지도 앨리스는 거의 출연 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없애야 할, 사라져야 할 악령에 불과할 뿐. 악령에서 지켜내야 할 '나의 진짜 인격'으로 승화된 부분, 그리고 영화의 전체 속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정의의 사도'로 표현되었던 인격이, 마지막에 마치 악령화되어 본래의 인격을 공격하는 것 ─ 이러한 부분들은 다른 영화와는 조금 다른 반전일지도 모르나, 역시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다.
영화《아이덴티티》에서는 정확히 배척되어야 할 인격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인격은 좀처럼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10개가 넘게 분열된 인격들 속에서, 그 정체를 찾아 내는 과정, 그리고 그 인격을 처단하는 것 ─ 그건이 영화《아이덴티티》의 목적이었다. 그 안의 인격들은 어느 인격이 살아 남든지 상관 없었다. 완벽하게 처단해야할 그의 살인마적 본성만 아니라면.
두 영화가 데칼코마니 처럼 닮은 것은, 마지막에서 더욱더 드러난다. 모두가 안도하고 안심할 때 즈음, 콰콰쾅! ─ 그렇게 영화는 공든 탑을 무너뜨려 버린다! 영화《아이덴티티》에서도 모든것이 평온해진 시간, 어느 수풀속을 헤매던 인격은, 숨겨져 있던 살인마의 인격이 그를 공격하고 만다. 공격한 이후의 모습을 전부다 보여주진 않지만, 우리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치료는 실패했다─라고.
영화《더 워드》역시 마찬가지이다. 앨리스의 본래의 인격만 남아, 예전의 앨리스로 돌아왔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순식간에 역전되어 버린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주인공 마냥 우리 마음을 지켜주던 그 인격, 앨리스를 공격함으로써 ─ 그렇다 역시 치료는 실패했고, 앨리스는 사라져버렸다.
영화《아이덴티티》를 꽤 흥미롭게 관람한 관격이라면, 한번쯤 볼 만 한 영화《더 워드》. 큰 기대만 갖지 않는다면, 두 영화의 닮은 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가면서 보는 즐거움은 꽤 쏠쏠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