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에 대하여 (2)
나의 그러한 아닥법은 성공적이었다. 약 2달 정도 목청을 매일같이 갈아넣은 덕분에, 아이는 누워자는 것에 익숙해졌던 모양이었다. 생후 4-5개월 즈음부터 돌을 약간 지나기까지, 나에겐 수면 황금기가 찾아왔다. 아이 재우기로 힘들어하는 육아 동료들에게 나름 나의 비법(?)을 전해주기도 했고, 그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받으며 애써 태연한 척 하기도 했다. 이전에 목청껏 '아-!'를 외치는 모습에 놀라시던 친정어머니께서는 내가 아이를 방에 누워두고 불끄고 문까지 닫고 나와버리는 모습에, 이번에는 아이가 아직 잠이 안든것 같은데 그렇게 나와도 되냐고 걱정과 놀라움이 섞인 질문을 하시곤 했다.
수면 황금기, 지금은 아득해져버린 그 시기, 그 때에는 아이의 잘 시간이 되면 함께 누워서 내가 정한 책을 적당히 읽어주고나서 '이제 잘 시간이야. 불끌게. 잘자' 라는 말을 속삭여준 뒤, 침대의 가드를 올리고, 불을 끄고 방문을 닫고 나왔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말이다. 책에서 보았던 분리수면의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 시기 나는 아이에게 굿나잇 인사를 하고 나와서 이유식을 만드는, 대단한 체력과 부지런함까지 가능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이유식을 만들게 아니라 운동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없는 법. 그 때의 나는 나의 육아에 나름 심취해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 그래, 그 때까지만 해도 육아가 재밌었다.
책에서 읽었든, 내가 스스로 계획을 세웠든, 나의 생각과 방향대로 꽤 아이가 잘 따라왔고, 나의 예상범위 안에서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래서 약간의 변형된 결과는 오히려 나에게 활력이 되었고, 다시 그 문제를 내 방식대로 해결해나감에 있어서 뿌듯함마저 있었다. 하지만 그러던 나에게도 마(魔)의 18개월이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15개월 쯤에 왔었다.
사실 그 시기는 아이에게 변화의 시기였던 것에 틀림없었다. 나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만에 복직했었기 때문에, 아이 생후 5-6개월 쯤에 종일 시터님을 구하고 업무에 복귀했었다. 다행히 마음 맞는 시터님을 구해서 1년정도 아이도 안정적으로 잘 컸었다. 그리고 아이는 15개월 쯤 집에서 가까운 어린이집에 입소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즈음, 시터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시터님이 바뀌고 만 것이었다. 어린이집이라는 큰 이슈를 앞두고 시터님이 바뀌었고, 첫번째로 바꾼 시터님이 문제가 있어서 또 다시 새로운 분이 오셨고, 다시 그 분이 안 맞아서 또 바뀌는, 세 번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시터님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시간은 흘러 어린이집 입소날이 되었고, 등원은 출근 전에 내가, 하원은 시터님이 해주시는 걸로 스케줄이 조정되고 있었다.
아이의 수면황금기가 끝이난 것도 그 시기였다. 아이는 내가 평소대로 '잘자'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고 나가는 것에 대해 매우 싫어했었고, 전에 없이 자지러질듯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나는 다시 아이 침대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완전히 재우고 나서야 아이방을 나설수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아이가 새벽에 엄마의 부재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다시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는 이유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