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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Sep 15. 2017

이제 남 일 같지 않다

ㅡ 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






 나는 병원약사다. 개국을 하고 계신 약사님들도 마찬가지로 환자분들을 많이 접하시겠지만, 병원에 있다보면 그저 약을 지어드리고 끝나는 관계가 아니라, 뭐랄까, 같은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 때가 있다. 큰 수술을 마치고 보조기를 한껏 두르고서 엉깃엉깃 엘리베이터를 타는 분, 휠체어 조작이 미숙하셔서 그 간단한 문을 통과하는 것에서 빚은땀을 흘리시는 분, 젊은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버리는데 혼자 뒤쳐져 느릿느릿 조심조심 걸어오시는 분.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 아니 지금까지는 그러한 상황에 대해 무감각하게 받아들였었다. '환자분'이라는 하나의  객관적인 실체로 파악될 뿐. 어쩌면 무뎌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쉽게 환자들을 접하다보니 병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수술이라든가 환자복이니 항생제니 하는 모든 것들에 관해서.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들을 나와 나의 가족들과는 별개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무뎌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에 대한 감정을 한 가지로 규정지어 분류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비중이 컸던 감정으로 보자면, 어렸을 때는 긴장과 무서움이 앞섰던 것 같다. 부모님을 좋아하면서도 어느 순간 회초리로 혼내실 것만 같은 어린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대학시절에는 건방지게도 귀여우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가엾음과 안타까움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같지 않은 모습과 종종 겪는 잔병치레, 눈에 띄게 늘어나는 주름과 흰머리. 그리고 언젠가는 ─ 그리움이 되겠지.

 



언젠가는, 그리움이 되겠지





 




한번씩 '어이구 내가 왜 이러지, 젊었을 땐 안 이랬는데'라는 말미가 붙을 때면, 가슴 한구석에 돌덩어리가 쿵,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그 떨어진 자리는 항상 묵직하게 아려왔다.




기계도 오래 쓰면 부품이 하나씩 제 구실을 못하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세포 하나하나 관절 하나하나 기능이 떨어지나보다.





 젊은 나도 조금만 아파도 짜증부터 나고 만사 귀찮아지고 그런데, 편찮으시고 불편하신 것도 이렇게 둘러서 말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시니, 참 난 복도 많이 받았구나 ㅡ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쿵, 가슴 더 깊숙한 곳에 바위가 더 무겁게 내려 앉곤 했다.









이젠 남 일 같지 않다





 요즘은 병원 안에서 마주치는 모든 환자분들의 얼굴에서 부모님이 겹쳐진다. 힘겹게 낑낑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시는 나이 지긋하신 환자분을 위해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다가, 멀쩡한 근무시간에 눈끝이 시큰거려,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삼키느라 애쓴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가장 가슴이 아픈 건,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글을 쓰는 지금도,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시간을 잡아다가 나무 밑둥에 묶어 놓고, 너 여기서 꼼짝 하지마, 라고 윽박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 광고 콘티에서 '지금 하세요'라고 했는데, 당최 나는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만 하면서 서 있을 뿐이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그런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지나가 버리는데.



 

 어쩌면 나는 오늘도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는 어리고 어리석은 나의 이 감정을 어딘가 털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해결책을 명확하게 제시해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단지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한뼘 정도의 나의 펜을 마음의 대들보 삼아 중심을 잡아 보려 애쓰는 걸지도 모른다. 작은 기둥이라도 붙잡고 서서, 그 중심을 잃지 말고, 다시 조그만 무언가라도 부모님께 해드릴 수 있는게 없는지 살펴 보기 위해서. 그 작은 마음들이 모여 부모님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거라 믿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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