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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약사 Dec 23. 2016

베토벤을 읽어드립니다

《나와 당신의 베토벤》 -  리처드 용재 오닐, 노승림






리처드 용재 오닐. ─ 그의 이름은 지난 몇년간 수없이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건방지게도, 그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전쟁고아라든가, 입양이라든가, 생부에 대한 이야기, 이러한 '스토리'들이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음악가'를 접하기 전에 먼저 나의 귀에 닿았었고, 나는 그러한 스토리를 업고 등장하는 음악가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일종의 감성팔이랄까. 매스미디어들은 '스토리'있는, 다르게 말하자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불운한 과거가 있는 인물들에 대해 회자하길 좋아했고, 국민들의 감성을 자극할때, 쉬운 말로 돈이 된다고 느끼는 것 같았기에, 그러한 미디어의 놀음에 놀아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다. 심지어, 그러한 리처드 용재 오닐이 결성한 디토 앙상블은 일종의 클래식 계의 아이돌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지만) 나는 일부러 배척하고 지냈었다.



─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람의 선입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단 한번의 만남이 어떻게 사람의 견해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 그 '인상' 이라는 것의 놀라운 능력을 다시금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p140.

음악은 말로는 할 수 없는 숭고함과 우리를 이어주는 이름없는 끈이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이고, 그 죽음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궁금해하는 존재다. 음악가로서 나는 내가 살아갈 모든 인생을 음악과 바꾸는 것 외에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위대한 작품에 바친 내 삶을 통해 누군가는 세상 사물들이 가졌을 이전의 모습을, 그리고 거기에 담긴 영원성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뻐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보다 훨씬 위대하고 장엄한 그 무엇인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책은 놀라운 구성력을 보여준다. 음악이나 미술관련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지금까지 이런 구성을 가진 책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캐주얼 하면서도 감성적이고, 그러면서도 학구적인 책. 



이 책은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에세이가 주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에세이 역시, 베토벤 현악 사중주의 작품 하나마다 하나의 에세이를 연결시키고 있다. 마치 이 책 하나가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곡집 같다. 하지만 그저 그렇게 작품들을 쭉 열거해 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베토벤의 인생에 맞추어 그의 현악사중주 작곡시기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주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 책은 단순히 현악사중주 전곡집이 아니라,  베토벤이라는 위대한 음악가의 전기가 된다. 그리고 또다시 놀라운 구성 ─ 단순히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에세이만 열거된 책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전기, 중기, 후기에 따라 인터미션처럼, 베토벤의 일생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노승림씨의 설명이 곁들여 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베토벤의 현악사중주와 그의 일생에 대해, 그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느낄수 있게 된다. ─ 이러한 구성의 음악 책, 나는 손꼽아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p28.

현악 사중주는 2백여 년 전에 작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얼마 전 작곡된 것 같은, 단단하면서도 신선한 풋사과와 같은 매력을 발한다. 그만큼 사중주는 시간을 초월한 생명력과 자극을 품고 있는 놀라운 음악이다. 내게 이 음악은 진정한 의미에서 영원한 고전, 그 자체다.





사실, 나는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는 어렵게 느껴져서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를 듣지 않으면 못 배기는 기분이 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추천하는 방법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2016년 12월에 발매된 Goldner String Quartet의  "Beethoven: The Complete String Quartets" 앨범 vol 1, 2를 함께 듣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이 책의 챕터 하나를 읽으면서, 그에 해당하는 작품번호의 곡을 듣는 방법를 택했다. 그러다보면 에세이가 먼저 다 읽히는데, 그러면 책을 잠시 내려놓고 해당 작품번호의 곡을 끝까지 다 듣는 것이다. 방금 전 읽었던 에세이에 언급되었던 감정들을 나도 따라 느끼면서. 그리고 나서 다시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물론, 이 방법은 책 한권 읽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될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진짜 제대로 읽는 방법은 베토벤을 같이 들어야만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러한 압박감 때문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 베토벤의 곡을 듣고 싶어지는, 스스로의 의지로 그렇게 하고 싶어 진다. 그러기에 다소 늘어지는 독서가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눈과 마음과 귀까지 한 데 어우러져,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는 온몸이 새로 태어나는 오묘한 기분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77.

소리가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에서도 최고의 음악을 창조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까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이나 소나타와는 달리, 현악 사중주는 그의 내면을 담고 있다고 한다. 그런 현악사중주에 대한 제대로 된 음악책. 하지만 결코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학구적이지 않은 가벼움. 그 가벼움 속에서 독자가 느끼게 되는 베토벤의 묵직한 울림. 그렇다. 이 책은 베토벤을 읽어주는 책일 것이다. 음악실에 걸려있는 사진으로만 알고 있던 베토벤의 괴짜스러움이 아니라, 인간 베토벤의 이야기. 그의 음악과 인생 철학. 



이토록 가벼운 에세이 집에서 그러한 묵직한 감동을 전하게 해준 리처드 용재 오닐과, 베토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그 사회적 배경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을 곁들여준 노승림씨와, 이러한 놀라운 구성력으로 편집을 해준 모든 이들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이 들게 되는 책이 아닌가 싶다. 






가장 심오하고 진지한 예술 작품은
인생의 가장 사소한 삶과 이어져 있다.

- 본문 중에서 -













p74.

"그날 밤, 반짝이는 별들이 천상을 비추고 있었다. 베토벤은 미심쩍다는 듯, 하지만 열망하는 눈길로, 무한한 저 세상에 빠져들고 싶다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p100.

"내가 귀머거리임을 이제 더 이상 숨기지 말라. 심지어 음악에서조차도."



p105.

자신의 운명을 이렇게 결론지었다.

"너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p155.

베토벤은 '그래야만 하는가?(Muss es sein?)'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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