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 <월든>을 읽고

by 은구비

독서모임에서 얼마 전에 박혜윤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에세이 자체도 좋았지만 책에 담긴 <월든>의 인용구가 인상 깊어서 <월든>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십수 년만에 다시 찾은 책은 앞부분에만 푸른 색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중도에 흥미를 잃고 덮었던 것인지 중고책을 샀던 것인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아무래도 지루한 고전이 아닐까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홀린 듯이 빠져들어 읽었다.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사상과 보편적인 형식미가 있어서인지 19세기의 글이 동시대 사람의 글처럼 현대적으로 보였다. 깊이 있는 사유가 밀도 높게 담겨 있었는데, 그럼에도 추상적인 이야기에 치우치지 않고 구체적인 표현이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인상깊은 문장이 워낙 많아서 페이지를 촘촘하게 접어놓았지만, 다시 읽으면 또 새로운 문장을 발견했다. 소로우는 혼자서 문학가와 철학자 역할을 완벽히 해낸다.


소로우는 사회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 사는 태도를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의 규범에 저항하는 태도를 높이 사지도 않는다. 그는 각자 본연의 길을 찾아내고, 자신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기를 바란다.


p.107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p.84

내가 아는 한 청년은 몇 에이커의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는데 그는 '여력만 있다면' 나처럼 살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결코 남이 내 생활 양식을 그대로 따르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그 사람이 내 생활 양식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나는 또 다른 생활 양식을 찾아냈을지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제각기 다른 인간들이 존재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며,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다.


p.364

사회에 대해 무조건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한 인간의 의무는 아니다. 자신의 내부의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취하게 되는 태도를,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간에 견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아래와 같은 부분은, 21세기 한국에서 부동산 문제로 스트레스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해도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부동산의 가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 집이 그만한 <생명의 양>을 들일 가치가 있는 물건이 맞는가 따져보고 싶어진다.


p.41

만약 문명이 인간 상황의 진정한 발전이라고 주장한다면(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단, 현명한 사람들만이 그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그 문명은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 보다 훌륭한 주택을 마련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어느 물건의 비용이라는 것은, 당장에 혹은 궁극적으로 그 물건과 바꾸어야 할 '생명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근처의 일반 가옥은 대략 800불 정도인데, 그만한 돈을 모으자면 부양 가족이 없는 노동자라도 10년 내지 15년이 걸릴 것이다. 이 계산은 노동자의 하루 수입을,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평균 1불로 따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자기의' 오막집을 마련하려면 자신의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가 집을 마련하는 대신 세를 사는 것을 택하더라도 상황이 더 나아진다고 볼 수는 없다. 미개인이 이런 조건으로 자신의 오막집을 대궐과 바꾸려고 했다면 그것이 현명한 짓이었겠는가? (중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이 무엇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소로우는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데, 구태의연하지 않으면서도 이해가 잘 되는 문장이어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월든 호숫가에 살면서 생긴 대인관계 변화를 바다와 강에 비유한 것이 특히 잘 어울렸다.


p.167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지 방문객의 부족을 느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숲속에 사는 동안 내 생애의 그 어떤 시기보다 많은 방문객들을 맞았다. 즉, 방문객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곳에서 나는 어느 곳에서보다 유리한 환경 아래 몇몇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훨씬 줄어들었다. 이 점에서 보면 나의 방문객은 단지 내 집이 마을에서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추려졌다고 하겠다. 나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바다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고, 이 바다로 사교라는 이름의 여러 강들이 흘러 들었다. 그러나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따져볼 때, 대체로 가장 훌륭한 침전물들만이 내 주위에 와 쌓였다. 게다가 반대편 쪽에는 아직 탐사되거나 개척되지 않은 대륙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바닷물에 떠내려오곤 했다.


소로우의 유머 감각도 내게는 잘 맞았다.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거나 매사 심각하지 않고, 진중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따금 슬쩍 유머를 섞을 때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방문객' 장에서 유머 빈도가 높아지는 걸 보니, 은근 사교성까지 갖춘 은자를 상상하게 된다.


p.159

사람들의 교제는 대체로 값이 너무 싸다. 우리는 너무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각자 새로운 가치를 획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하루 세 끼 식사때마다 만나서는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치즈를 새로이 서로에게 맛보인다. 이렇게 자주 만나는 것이 견딜 수 없게 되어 서로 치고 받는 싸움판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예의 범절이라는 일정한 규칙들을 협의해 놓아야만 했다.


<월든> 같은 고전이라면 매년 읽어도 좋을 것 다. 무엇보다 읽으면 호수가를 걷고 있는 듯 청량해서 늘 가까이 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은 앞으로 '월든을 읽고(10)' 정도까지는 써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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