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토에 따르면,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우리는 날마다 열심히 지위 게임을 하고 있다. 공동체에서 생존하는 대형 유인원으로서, 높이 올라갈수록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지위게임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집단의 일원이 되고 집단 속에서는 인정과 찬사를 받으려고 애쓰며, 지위를 잃을 때 우울해지고 반사회적 행동이 늘어난다.
이 지위 게임을 위해 우리의 뇌는 스스로 이야기 속의 영웅이라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그중 가장 강력한 무기는 도덕적 편향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얼마나 부정직하게 게임을 하든, 뇌는 우리가 결국 대다수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 따라서 연구자들은 도덕적 우월감은 "유난히 강력하고 만연한 '긍정적인 자아 환상'의 한 형태"라고 결론을 내렸다. (3장에서)
인생의 지위게임은 지배와 도덕과 성공의 게임이 혼재돼 있다. 지배 게임은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고, 도덕 게임은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성공 게임에서는 기술이나 재능,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인류의 지위 게임은 잔혹한 지배 게임 중심이었다가, 점차 모두가 공유하는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 명성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명성 게임은 상징의 게임으로서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했고, 지위를 얻는 방법은 도덕 게임이나 성공게임이었다.
우리는 지위 게임을 할 때마다 평판을 쌓는다. 평판은 모든 플레이어의 마음속에 제각각의 깊이와 제각각의 공정성으로 존재한다. ... 그런데 이런 평판은 우리가 인생의 게임에서 내세우는 왜곡되고 부분적인 아바타의 평판이지 우리 자신의 평판이 아니다. 누구도 진실로 우리를 알지 못한다. 영원히 알지 못한다. (5장에서)
우리는 청소년기부터 외부 세계의 게임에 참가하여 경쟁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에 이 과정이 시작되는 이유는 뇌의 일부 영역에 변형이 일어나 타인의 평가에 훨씬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고 거부당할까 두려워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청소년들은 간절히 원하는 지위를 찾아서 지위게임에 뛰어든다. 인간은 적어도 만 년 전부터 청소년 나이가 되면 부족에 참가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청소년기를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결정적인 시기", 곧 아동기 초기에 언어를 습득하는 기회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보았다. (15장에서)
사이비종교와 정치가 지위게임을 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부분은,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고 이해하기 힘든 인간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준다. 문화대혁명을 사례로 들어 경직된 문화에서의 지위게임을 보여주는 부분에서, 우리 사회도 경직된 문화에 가깝지 않은가 우려를 하게 되었다.
겔팬드는 질병이나 기근, 자연재해, 분쟁 같은 사건을 겪은 국가일수록 다른 느슨한 국가들보다 사회 규준이 더 엄격하고 관용이 적은 경직된 문화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태적, 역사적 위협에 맞서는 집단은 혼돈 앞에서 질서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위협이 강할수록 사회가 더 경직된다." ... 경직된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한 물건을 사고 자제력이 강한 편이다. ... 경직된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은 위계질서와 권위를 더 많이 존중한다. 경직된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로 정확하고 올바른 도덕적 행동으로 지위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 경직된 문화의 사람들은 그들의 게임에서 제시하는 광적이고 신성한 꿈을 더 잘 믿는다. (21장에서)
게임이 경직되면 그 게임이 세상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도 경직된다. 게임은 위계질서 - 우리 게임의 위치 대 경쟁 게임의 위치 - 를 살피고, 그런 질서의 형성 과정을 설명해주는 단순하고 자기 중심적이며 도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야기는 항상 똑같다. 우리는 도덕적인 사람들이라 더 많이 누릴 자격이 있고, 우리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들은 사악한 무리라는 식이다. ...이야기는 지극히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고, 우리의 꿈은 우리가 참가하는 게임의 꿈이다. (23장에서)
근대성은 지위게임 관점에서 보면 지배-도덕 게임에서 성공게임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데이터와 역사를 보건대, "우리가 진실로 남을 돕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성공 게임을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역사, 정치를 지위게임 관점에서 재조명하는 장이 이어지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신좌파, 신우파의 정치 담론을 지위게임으로 설명하는 장이었다. 현대 정치에 대한 독창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석이라고 느꼈다.
특권은 폭발력이 있는 개념이다. 앞서 보았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남들이 자기 위에서 우쭐하게 활보하고 자기가 부당한 지위에 있고 자신의 지위가 전시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분노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든 조롱하든 멸시하든 추방하든 처형하든 어떤 식으로든 자기 위에서 활보하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싶어 한다. 사실 이런 식의 분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에 동력을 공급해 왔다. 나치와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 얻어내지 않은 지위를 부당하게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을 분노의 표적으로 삼았다. ... 진실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들이 '속임수를 썼다'는, 뇌가 만들어낸 단순한 이야기만 믿고 그들의 가시적인 성공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믿기 쉽다.(26장에서)
이를테면 신좌파의 문명화 사명은 백인(특히 백인 남성 등)을 악마화하는 한편, 신우파는 소수 집단이 교육받은 엘리트들에게 부당하게 지위를 받았다고 믿고 이들을 악마화한다. ... 우리가 인생과 위계질서에 대해 꾸는 꿈은 조금 다르다. 신좌파는 이 게임이 전적으로 성차별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신우파는 교육받은 엘리트가 그들에게 전적으로 관심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엘리트들이 백인을 멸시하고 소수 집단의 고통에만 주목하고 그들만 존중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양쪽 모두 과장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 하지만 그들은 생략 때문에 잘못된 길로 이끌린다. 양쪽의 꿈이 충돌하는 가운데 서로의 꿈에 증오와 진실이 모두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27장에서)
이상주의자들이 말하는 인류에 관한 이야기에서 인간은 본래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불평등을 개탄하면서 결국 새로운 계급 질서를 구축하고 그 질서의 꼭대기로 올라가려 한다. 이런 행태가 우리의 본성이다. 지위를 얻고 싶은 욕구는 영원히 근절되지 않는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게임을 위해 지위를 얻고, 나아가 당신과 당신과 당신 위에서 가능한 한 높은 지위를 얻어서 군림하는 것이 삶의 비밀스러운 목표다. 이것이 우리가 의미를 만드는 방식이다. 정체성을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의 최악의 모습이자 최선의 모습이자 불가피한 진실이다. 인간에게 평등은 언제까지나 불가능한 꿈이다.(28장에서)
마지막 장은 지위게임 이론에 기초해서 우리가 좀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론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삶에 적용해볼 수도 있게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완성도 높은 구성이 돋보였고, 독자로서 책의 만족감이 높았다.
1. 따뜻함과 진심과 능력을 실천하기
따뜻함을 보이는 것은 상대를 지배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진심을 보인다는 것은 남을 속이지 않고 공정하게 게임을 치른다는 뜻이며, 능력을 보이는 것은 지위를 위한 경쟁에서만이 아니라 게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능력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2. 작은 명성의 순간 만들기
작은 명성의 순간을 만든다는 말은 항상 명성을 사용할 기회를 찾는다는 뜻이다. 남들에게 지위가 높아졌다고 느끼게 해주면 그들도 우리의 영향력을 인정할 가능성이 커진다.
3. 게임의 위계질서를 이용하기
우리가 지위를 얻는 방식을 관찰하면 우리의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파악할 수 있다. 독재는 지배-도덕 게임이다. 당신이 참여하는 게임이 게임 안에서든 밖에서든 사람들에게 게임의 규칙과 상징에 순응하라고 강요하는가?... 독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은 여러 가지 게임을 하는 것이다. 세뇌당한 듯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한 가지 게임에 몰아넣는 경향이 있다. ... 그러면서도 모든 게임에 집중력을 똑같이 배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4. 도덕 영역 줄이기
남들을 판단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가? 그래서 값싸고 오염된 지위를 얼마나 얻는가? ... 우리가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우습게 보고 증오하기 쉬운, 우리와는 동떨어진 꿈을 꾸는 사람들을 무심히 비난하는 행동을 멈춘다는 뜻이다.
5. 균형 있는 사고 방식 기르기
적의 게임을 이해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면서, 그 게임의 타당성에 설득되지 않더라도 지위를 생성하는 그들만의 기준을 인식해야 한다.
6. 다르게 살기
우리는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높아서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길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집단의 중요한 행동 기준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작은 비순응(nonconformity)의 활동을 하여" 성공을 위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만의 독창적인 일을 하려면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신성한 규칙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게임에서 지위를 높일 수도 있다. ... 더 나은 전략은 종종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장 마지막 소단락, '7.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책이 끝난다.
이렇게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게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지혜를 얻을 수 있다. ... 그리고 세상의 사건들을 열심히 파고들면서 자잘한 망신거리와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들을 두고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는 도덕적 이야기를 자동으로 지어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상상의 중심에는 늘 지위를 건 싸움이 있다. 이제 나는 이런 과정을 알아채서, 이것이 시작되지 않게 막고, 이 게임의 밖으로 빠져나가고, 조금이나마 합리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라 결승선이 없는 게임이라는 진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 인생의 의미는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내용은 마지막 단락과 함께 '4. 도덕 영역 줄이기'와 '6. 다르게 살기' 였다. 내가 남을 깎아내리면서 값싸고 오염된 지위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생각하게 되었고, 무심코 자동적으로 드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독창적인 작은 비순응 활동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의미 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더 지향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하는 게임을 택해 꾸준히 참가하고자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