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벤치에 앉아, 배고픔과 체념을 꾹꾹 씹으며 멍하니 있었다.
여행의 설렘은 이미 증발했고, 공복이 주는 예민함만이 나를 잠식하던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긍정 에너지의 화신, 낯선 아저씨가 털썩—아주 스스럼없이 내 옆에 착석했다.
“Traveling today?”(오늘 여행하시나봐요?)
“네, LA로 가는 중이에요.”
“Ah, nothing refreshes you like travel! LA’s great—so much to see.”
(여행만큼 힐링되는게 없죠! LA 좋죠! 볼 것도 많고!)
배는 고픈데, 내 옆자리에 활기찬 여행 전도사가 등장한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는 쉬지 않고 긍정을 퍼부었다.
“Hey, you got to try the avocado sandwich here—it’s amazing.”
("저기,여기 아보카도샌드위치 먹어봐요, 진짜 끝내줘요!")
그러곤 나에게 복을 빌 듯 껄껄 웃으며 자리를 떴다.
화장실에 간 건지, 인생에 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그 샌드위치가 갑자기 내 인생의 목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매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건 “Sold Out”이라는 냉혹한 팻말과, 허망하게 손가락만 빨고 선 나 자신이었다.
잠시 후 돌아온 아저씨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Aw, that’s too bad—but you’ll get it next time, right?”
(아,정말 안됐군요.-다음번엔 먹을 수 있을거에요. 그렇죠?")
…다음번?
이 공항에, 이 매점에, 이 샌드위치를 먹으러 다시 오라고요?
텅 빈 손을 바라보다가, 공복을 꾹 눌러 긍정하며 대답했다.
“그… 그럴게요!”
샌드위치는 못 먹었지만, 나는 미국인들의 '긍정의지망상회'에 정식으로 참가한 기분이었다.
배고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긍정적인 태도와 스몰토크의 열정.
이쯤 되면 누가 배고픈 사람인지, 누가 정신적으로 허기진 사람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웃고 말았다.
배고파서인지, 미국식 긍정세뇌에 굴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빠르게 ‘긍정’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하지만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 긍정은 단순한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이 사회가 삐걱거리지 않도록 움직이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것이었다.
내 텅 빈 손을 바라보며 아저씨는 말했다.
“다음엔 먹을 수 있을 거야.”
그건 나를 위로하는 ‘미국식 언어’였지만, 그 순간의 나에게는
“이제 그만 아쉬워하고, 다음 걸 생각해”라는 냉정한 격려처럼 들렸다.
한국이 슬픔을 함께 껴안고 머물러주는 데 집중한다면,
이곳은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옮겨가는 데 익숙하다.
그날 나는 샌드위치를 먹지 못했지만,
미국식 긍정이라는 낯선 맛을 처음으로 씹어봤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래, 그 맛이 입 안에 남아 있었다.
샌드위치를 놓친 아쉬움과 배고픔은 나만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낯선 아저씨의 긍정적인 말은 그 감정의 파도를 막고,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냈다. 이 사회는 한 사람의 슬픔에 오래 머물러 주지 않는다. 대신 '다음번'이라는 희망을 던져주며 빠르게 앞을 보게 한다. 어쩌면 성장의 조건이란, 아쉬움에 잠겨있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긍정적인 '다음'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