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y 컬러박스
Hay 컬러 박스를 처음 봤을 때, '수납함'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그냥 예쁜 박스였다. 공장에서 막 찍어낸 플라스틱 상자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작업실에서 공들여 만들어진 작은 조형물 같았다.
무광의 보드라운 질감, 뚜껑과 본체가 완벽하게 맞물리는 섬세함, 그리고 무엇보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색감. 핑크, 민트, 옐로, 그레이 등 각각의 컬러는 서로 조화로우면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뽐냈다. 보통 수납함의 주인공은 내용물이다. 하지만 Hay 컬러 박스의 주인공은 박스 그 자체다. 심지어 비어 있어도 그 자체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나는 이 박스를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리의 목적이 뭔데?” 사람들은 보통 공간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해, 물건을 쉽게 찾기 위해 정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이 박스를 두기 위해서요.” 처음에는 책상 위를 어지럽히는 케이블, 영수증, 립스틱 같은 자잘한 것들을 넣으려고 샀다.
그런데 막상 놓고 보니, 내용물을 가리고 싶지 않았다. 이 컬러 박스는 물건을 숨기는 기능보다, 나에게 '보는 즐거움'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선사했다. 투명한 뚜껑도 없는데, 그냥 저 색감만 바라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물건이었다.
Hay 컬러 박스는 내게 '컬러 팔레트'를 선물했다. 처음엔 하나로 시작했지만, 며칠 뒤 다른 색상의 박스들을 추가로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파스텔 핑크 옆에 짙은 네이비, 그 옆에 은은한 옐로를 놓으며 색의 조화를 맞추는 일이 즐거워졌다. 자연스럽게 방은 '정리된 공간'이 아니라 '컬러 팔레트'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걸 보고 "예쁜 쓰레기"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기능보다 디자인이 앞서고, 합리적인 소비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박스는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내 일상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더해주는 소중한 오브제다.
우리는 왜 이런 물건에 이끌릴까? 아마도 우리는 '보이는 것'에 큰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정돈이 완벽하지 않아도,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Hay 컬러 박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겉은 언제나 완벽하게 멀쩡해 보이니까. 이 박스를 보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정리한다고 인생까지 정리되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착각을 주는 물건이 필요하다고.
이런 물건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혼란스러움이 마음을 지배할 때, 눈에 보이는 작은 질서와 아름다움은 큰 힘이 된다. 복잡한 생각 대신 눈앞의 색감을 온전히 느끼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치 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이 작은 플라스틱 박스가 내게는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고 싶은 대로 산다”는 말은 이럴 때 딱 맞는 말이다. Hay 컬러 박스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습,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의 취향을 대변해 준다. 이것은 나를 위한 소비이자, 나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이 아름다운 박스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 안에는 무엇이 들었든 상관없다고. 내게 중요한 건, 이 박스가 나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니까.
“우리는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고 싶은 대로 산다”
-작자미상